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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 절도범 "국가 기증 의사 있다"

yellowday 2012. 8. 10. 13:16

입력 : 2012.08.10 03:11

항소심 재판서 밝혀
4년 전 골동품 가게서 훔쳐 1심서는 징역 10년 감수한 채
해례본 행방 입 다물어… 해외 밀반출 가능성 우려
문화재청 관계자 "무죄 전제해 진정성 떨어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을 훔쳐 4년 넘게 감춘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모(49·경북 상주시·무직)씨가 9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해례본을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진만)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판사가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국민과 후손을 위해 상주본을 기증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배씨는 한참을 생각한 뒤 "기증할 의사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씨는 "(의사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우선 국가에 상주본 보관을 위탁한 뒤 추후 기증 여부를 결정하는 등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절도범으로 몰린) 억울한 상황이 밝혀지고, (재판부가) 정확하게 판단해 주면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왼쪽)과 국보 70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

검찰은 "국가 보물을 숨겨 놓은 채 자신의 죄를 경감시키기 위해 법정에서 거래를 하려고 한다"며 1심과 같이 배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배씨가 이날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우려했던 상주본 해외 밀반출 가능성은 없어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자신의 무죄를 단서로 밝힌 기증 의사라 진정성이 떨어져 보였다"고 전했다. 배씨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30일 열릴 예정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08년 7월 배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상주본은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좋아, 전문가들이 "가치가 1조원도 넘을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경북 상주에서 발견됐다고 해 '상주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경북 상주시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던 조모(67)씨는 "2008년 7월 배씨가 가게에서 고서적 2박스를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몰래 끼워넣어 훔쳐갔다"며 배씨를 고발하고, 물품 인도 청구소송을 냈다. 작년 6월 대법원은 조씨 소유권을 인정했고, 이 과정에서 이 해례본이 지난 1999년 문화재 절도범 서모(51)씨가 경북 안동시 광흥사에서 훔쳐 조씨에게 팔아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배씨는 재판 과정에서 굳게 입을 다물고 1심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되는 것도 감수한 채 해례본 행방을 감춰왔다. 조씨는 지난 5월 "해례본을 찾는 대로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기증식까지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