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오디오북

yellowday 2012. 8. 6. 18:37

입력 : 2012.08.05 22:30

알렉스 헤일리는 아프리카의 구술(口述) 역사 덕분에 소설 '뿌리'를 쓰게 됐다. 헤일리는 외할머니로부터 미국에 흑인 노예로 끌려온 7대 조부 이름이 쿤타 킨테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집안의 뿌리를 역추적해 서아프리카 감비아에 있는 작은 마을 주푸레까지 찾아갔다. 거기서 지난 200년 마을 역사를 줄줄 외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1750년쯤 쿤타 킨테라는 소년이 나무를 하러 나갔다가 노예 사냥꾼에게 붙잡혔다며 입으로 전해온 역사를 들려줬다. 노인은 '살아서 말하는 역사책'이었던 셈이다.

▶18~19세기 조선에도 소설 낭독을 직업으로 삼는 전기수(傳奇)가 활동했다. 전기수는 종로와 동대문 사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오가며 '임경업전' 같은 소설을 읽어줬다. 이야기의 희로애락을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연기하다 흥미로운 대목에 이르면 소설 읽기를 그쳤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견디다 못한 청중이 돈을 던져주면 낭독을 이어갔다.

▶서양에선 15세기 인쇄 혁명이 일어난 뒤 종이 책이 점점 더 값이 싸지면서 대중화하는 길을 밟아왔다. 책이 흔해지면서 말로 하는 스토리텔링의 구수한 맛은 사라져 갔다. 그러던 1931년 미국 의회는 '말하는 책'을 되살리는 일을 승인했다. 미국 시각장애인협회가 비닐 레코드로 만든 오디오북을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보내는 사업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후 오디오북은 학교와 공공도서관용으로 시장을 넓혔다.

▶상업용 오디오북은 1980년대 중반부터 출판시장에서 덩치를 키웠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단 자동차가 늘어나자 운전자들이 큰 오디오북 고객이 됐다. CD와 MP3 시대가 열린 뒤로도 미국 출판시장에서 10%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 의원 시절이었던 2006년과 2008년 책 '아버지로부터의 희망'과 '담대한 희망'을 썼을 뿐 아니라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을 냈다. 지지자들에게 육성을 들려주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가 낸 오디오북은 그래미상에서 최고 앨범 낭독상을 두 차례 받았다.

▶우리 독자들도 요즘 오디오북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2009년 4000개가 안 되던 판매량이 지난해 1만3000여개로 2년 사이 세 배가량 늘어났다. 주로 30~40대 남성이 자투리 시간을 쪼개 오디오북을 듣는다고 한다. 디지털 문명 탓에 눈이 혹사당하는 세상이다. 피곤한 눈 대신 귀로라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사는 게 힘들수록 귀에 대고 '말하는 책'이 위안을 주는 벗처럼 느껴진다. 두 눈 딱 감고 귀만 열어 책 속 세상으로 망명하려는 독자들이 많아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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