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시에스타

yellowday 2012. 8. 1. 17:13

입력 : 2012.07.31 22:32

낮 12시, 불볕이 소리 없는 폭포처럼 쏟아지고 집시들이 사는 사크로몬테 언덕은 휘뚝 백색 공포에 잠긴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를 찾은 관광객들도 세계문화유산 알함브라궁전만 들르고 이쪽으로는 발길이 뜸하다.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길을 혼자 걸었다. 인구 23만 도시에서 한낮에 경험하는 낮잠 시간 시에스타와 절대 정적은 차라리 괴기스럽다. 두 시간 동안 모든 움직임이 멈추는 사각지대에서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고대 로마인들은 해가 떠 있는 낮을 4등분했다. 오전 6~9시를 프리마, 9시~정오를 텔시아, 정오~오후 3시를 시에스타, 3~6시를 노나라고 했다.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같은 지중해 국가는 물론 중남미와 북미 히스패닉들도 낮잠 자는 시에스타를 즐긴다. 잠을 안 자는 아이들은 집 안에서 발소리를 죽여야 하고 이웃집 가는 것도 삼간다. 업무는 오후 4시쯤 재개된다. 무더운 날씨 탓도 있고 점심을 집에서 먹는 습관과도 관련이 있다.

▶시에스타는 1980년대 '지중해의 게으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폐지 운동 대상이 됐다가 90년대 웰빙 바람을 타고 되살아났다. 노벨문학상 작가 카밀로 셀라는 시에스타를 '이베리아 반도의 요가'라고 찬양했다. 요가처럼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준다는 얘기다. 몇 해 전 스페인은 "시에스타 문화를 널리 보급하자"며 경연대회까지 열었다. 참가자 몸에 박동 측정기를 채우고 20분 안에 얼마나 깊게 잠에 빠지는지를 재어 우승자를 가렸다.

▶경제 위기에 빠진 스페인 정부가 경기를 북돋우기 위해 사실상 시에스타를 없애는 법안을 내놓았다. 연면적 300㎡ 넘는 상점들은 9월부터 영업시간을 25% 늘릴 수 있게 했다. 그러면 시에스타 시간이 크게 줄거나 아예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 공무원들은 이미 2005년부터 시에스타를 못하게 돼 있다. 15분 안팎 깜박 조는 정도가 아니라 2시간 넘게 눕는 게 문제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요즘엔 매일 시에스타를 즐긴다는 사람은 20%밖에 안 된다.

대만 장제스는 점심상을 물리고 축음기로 슈베르트 '아베마리아'를 즐겨 들었다. 옆방 비서는 음악이 끊기면 총통이 잠들었다는 걸 알았다. 석유왕 록펠러는 30대 중반부터 무조건 한 시간씩 낮잠을 잤다. 대통령이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낮잠이 심장병 사망 위험을 37%까지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어떤 회사는 직원들에게 편히 낮잠을 자라며 '수면 캡슐'이나 간이침대 '데이 베드(day bed)'를 내준다. 그러나 경기 침체를 견뎌낼 장사는 없다. 먹고사는 문제와 시에스타가 붙은 싸움에서 일단 시에스타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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