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헐버트의 한글 사랑

yellowday 2012. 6. 14. 21:45

입력 : 2012.06.13 22:35

"한국어는 그 발음이 낭랑하고 말하기에 편리한 언어다. 대중 연설을 위한 매체로는 한국어가 영어보다 낫다." 1886년 조선에 온 스물세 살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한국인보다 더 우리말과 글을 사랑했다. 그는 신학대에 다니다 고종이 세운 교육기관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영어를 가르치러 왔다. 처음엔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했던 헐버트는 한글을 배운 지 나흘 만에 읽기를 깨우쳤다.

▶헐버트는 3년 뒤 직접 한글로 쓴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펴냈다.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이다. 여러 나라 제도와 풍습을 소개한 사회·지리 교과서였다. 그는 한글을 업신여기고 한자를 떠받드는 풍토를 안타까워했다. "한글은 각 자모에 의해 정확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완벽한 문자인 반면, 한자는 각 글자가 단어의 발음과 관계가 없다."

▶헐버트는 1906년 영국에서 출간된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비교했다. 'I am going along the road, when suddenly~'라는 긴 문장이 한국어로는 '내가 길을 가다가'라는 단 세 마디면 충분하다고 했다. 우리말 동사는 어간(語幹)이 같아도 어미 하나만 바뀌면 전혀 다른 뜻의 문장이 된다고 감탄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디로 가다'를 '갈까'로 바꾸면, 영어로는 'I wonder whether I will go or not'이라고 새로 장황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헐버트의 한글 사랑은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1907년 고종의 특사로 미국에 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달 뒤 일제가 이준 열사를 빌미로 삼아 고종을 퇴위시키자 헤이그 밀사 파견에 관여했던 헐버트도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늘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헐버트는 1948년 여든다섯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지만 쇠약한 몸으로 한 달 넘게 배를 타고 오느라 지쳐 귀국 1주일 만에 세상을 떴다. 그는 바라던 대로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서울시가 세종로 일대를 한글 문화 관광지로 가꾸기로 하고 한글을 사랑한 푸른 눈 한국인 헐버트를 기리는 기념물을 세운다. 그가 배재학당에서 가르친 국어학자 주시경과 함께 모신다고 한다. 120여년 전 영어를 가르치러 왔다가 최초의 한글 교과서를 쓰고, 서양 음계로 아리랑 악보를 처음 만든 헐버트.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던 그를 우리 사회가 뒤늦게나마 제대로 기리게 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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