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즐거운 결혼식

yellowday 2012. 3. 28. 00:03

 

입력 : 2012.03.27 22:59

1991년 여름 경남 통영 앞바다 작은 섬에서 나흘짜리 소설창작교실이 열렸다. 둘째 날, 강사로 온 소설가 윤후명과, 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수강생이 결혼식을 올렸다. 소설가 정연희가 온 섬을 헤매며 산유화를 꺾어 와 신부의 부케를 만들었다. 소설가 이호철이 주례를, 시인 이근배가 사회를 봤고 축가도 소설가 유현종이 불렀다. 김주영은 문우(文友)의 새 출발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예식은 조촐했지만 진심 어린 축하가 쏟아진 문단 축제였다.

▶결혼은 축제다. 우리 옛 결혼식도 동네가 왁자지껄한 마을 잔치였다. 신부집 마당이 식장이고 식당이고 놀이판이었다. 친척과 이웃들은 형편 따라 술 한 단지, 떡 한 시루, 달걀 몇 꾸러미씩을 부조(扶助)로 들고 왔다. 신부댁은 갖가지 빛깔의 색떡을 대청에 죽 늘어놓아 화환처럼 장식했다. 누구라도 결혼을 축하할 수 있었고 누구라도 흥에 겨워 먹고 마시고 놀다 갔다. 그 시절 '열린 결혼식'은 1950년대 전문 예식장이 등장하면서 갇힌 공간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6·25 뒤 서울에서 처음 생긴 결혼식장이 관훈동 종로예식장이었다. 공회당처럼 밋밋한 실내에 의자만 줄지어 들였지만 면사포 쓰고 신식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서 인기를 끌었다. 그 뒤로 세월이 가면서 결혼식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아졌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자란 시인 정일근은 둘째·셋째 고모가 시집가던 날을 제일 신났던 잔칫날로 기억한다. 그는 "결혼식이 축제였던 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 같고 뷔페 식권 같다"고 했다.

▶어제 조선일보에 실린 어느 결혼식 이야기에선 '축제'라는 결혼의 의미가 새롭게 빛났다. 한국 신랑과 일본 신부는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식을 치르는 게 싫어 파주자연학교를 빌렸다. 그곳 텃밭 채소로 차린 식사까지 합쳐 식장 값이 430만원이었다. 청첩장은 신랑·신부가 그렸고 부케는 신부와 친구들이 만들었다. 드레스는 친구 것을 물려받았다. 화장도 스스로 했다. 가족과 친지 130명이 모여 웃고 떠드느라 낮 두 시에 시작한 예식과 피로연이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도시에서 예식장 말고 혼례 올릴 곳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찾기 나름이다. 교회·성당·구청·공공도서관이 있고,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도 훌륭한 대안이다. 한적한 야외에는 좋은 곳이 더 많다.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가 마음을 합쳐 체면과 겉치레만 벗어던지면 된다. 청첩장을 '살포'할 필요도 없고 하객을 양껏 불러모을 일도 없다. 그러면 파주자연학교 결혼식처럼 누구나 하객으로 가고 싶어할 한판 결혼 축제를 벌일 수 있다.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랜드 사기도박  (0) 2012.04.02
오바마의 지각  (0) 2012.03.30
굶주림과 독재정권  (0) 2012.03.28
김용 세계은행 총재 후보  (0) 2012.03.26
봉하대군  (0) 201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