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 * Korea

바다를 품은 마을, 마을을 잇는 바닷길

yellowday 2011. 12. 31. 13:53

바닷가 마을 이름 없는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파도는 ‘나를 알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바다가 일상인 사람들은 그 앞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내일 다시 일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파도는 계속 아우성이고 그 사람은 그물코만 꿰고 있다. 말 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마을은 바다를 품고 바다는 길과 나란히 달린다.

해 뜨기 전 바다가 요동을 친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고 옷깃을 파고든다. 그러나 여명 속에 우두커니 선 사람들은 날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섰다. 호미곶, ‘상생의 손’ 넘어 저 멀리 수평선이 ‘울그락불그락’ 심상치 않다. 바다가 곧 폭발하면서 엄청난 불기둥, 물기둥이 한 순간에 하늘을 덮칠 것 같다. 순간, 떠오른 해. 이내 바다는 잔잔해졌고 드센 바람도 고개를 숙였다. 새로운 하늘에 새 해를 띄우기 위해 바다는 저렇게 매일 몸부림을 치는가 보다.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경북 포항시 영일만에서 제일 동쪽으로 돌출한 땅 끝이 호미곶이다.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리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을 든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며 ‘천하의 명당’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고산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동쪽 끝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 육지 가운데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하여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은 기념조형물, 성화대, 불씨함, 연오랑세오녀상, 공연장 등이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이곳 광장의 기념조형물인 상생의 손이다.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된 거대한 손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 화합을 상징하고 있다.

호미곶 일출의 기운을 품고 본격적으로 포항 여행에 나선다. 포항 내륙의 여행1번지, 오어사로 향한다. 포항시 오천읍 운제산 자락에 있는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절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중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절이다.

1 오어사 뒤로 펼쳐진 풍경. 2 오도리 해변길.

오어사, 원효와 혜공의 전설로 유명

특히 오어사는 원효와 혜공의 전설로 유명하다. 원래 이 절 이름은 ‘항사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원효는 혜공과 내기를 했다. 산 물고기를 먹고 배변을 했을 때 물고기가 살아 있는 쪽이 이긴 걸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고기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살아 나왔는데 그 물고기를 두고 두 스님이 ‘내 물고기, 내 물고기’ 하며 서로 자신의 물고기가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 오(吾),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가 됐다고 한다. 어린 아이 장난 같은 두 고승의 일화가 호수처럼 넓은 마음을 일깨운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와 절이 어우러진 풍경이 고즈넉하다. ‘오어지’라는 호수가 절을 감싸고 있다. 호수는 오어사 진입로 왼쪽부터 시작해 절 마당 뒤를 지나 더 깊은 계곡으로 이어진다. 오어사는 절 뒤에서 풍경을 봐야 한다. 산 그림자 비친 호수는 산의 색을 닮았다. 스산한 초겨울 바람도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 내려 앉아 따듯하게 느껴진다.

오어사를 나와 14번 도로를 따라 오천읍을 통과하면서 31번 도로를 만나면 포항시내 방향으로 간다. 포스코 대교를 건너 포항시내로 진입한다. 그 길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환호해맞이공원을 지나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지도 표기상 20번 지방도)와 만나게 된다.

이 해안도로는 바다와 마을을 품고 북쪽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칠포해수욕장을 만난다. 바다에 젖은 모래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고운 모래에 발이 빠졌다. 바닷가에 서서 부채처럼 휘어진 저 끝 바닷가 마을을 바라보았다. 벌거벗은 산 아래 마을이 있고 마을 앞이 바다다. 전신주가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간혹 보이는 파란 지붕은 바닷가 마을의 고유한 풍경이다. 마을 안이 궁금해졌다.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차를 돌려 칠포항이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방파제로 막아 놓은 항구에 햇살이 고여 아늑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갯바위에 올라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바다 언덕 기슭을 돌아가는 모퉁이를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자, 낡은 그물을 차고 앉아 분주히 손을 놀리는 아줌마, 저 멀리 방파제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걸어오는 엄마와 아이, 나는 그 가운데 서서 고개를 돌려 풍경 속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