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있는 풍경_ 충북 괴산 갈론마을
초가지붕 위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다. 지난 밤 구들장을 데웠던 아궁이 불씨에 다시 장작을 올린다. 나무 타는 향기로 시골마을의 새벽은 시작된다. 막다른 길 그 끝에 둥지를 튼 갈론마을은 군내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다. 한때는 화전민들이 계곡을 따라 밭을 일궜고 그 이전에는 당쟁의 칼날을 피해야 했던 조선 선비들의 은신처였다. 이제는 자연만 남아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갈론마을과 갈론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 ▲ 갈론마을을 통과하면 갈은구곡(갈론계곡)이 시작된다. 민가도 없고 차도 다니지 못하는 계곡은 청정 자연 그대로다.
무성했던 녹음의 기억과 화려한 단풍의 시간도 다 지나 이제는 겨울. 소멸과 생성의 기운이 이 계절에 함께 있음을 알기에 자연을 닮은 모든 생명은 낮게 엎드려 숨죽이고 있지만 잠들지 않는 도시는 계절도 비켜가는지 쉴 줄 모르는 하루가 찬바람에 흔들린다.
그냥 거기 그렇게 있어 생각만 해도 마음 푸근해지는 고향을 생각한다. ‘Y’자로 생긴 나뭇가지를 다듬고 기저귀 고무줄을 달아 만든 새총을 들고 누비던 눈 쌓인 들과 산. 배상다리 ‘뚝방’ 위에서 연을 날리고 꽁꽁 언 시냇물에서 썰매를 지치던 칼바람 겨울의 추억은 언제나 봄보다 따듯하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비치는 야윈 산도 고향을 닮은 시골 마을의 굴뚝 연기가 있어 따듯해 보인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갈론마을. 괴산 읍내에서 20㎞도 안 되는 거리지만 괴산에서 갈론마을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없다. 시내버스가 들어가는 곳 중 갈론마을과 가장 가까운 마을은 외사리(수전리)인데 하루에 시내버스가 5대밖에 안 다닌다. 그 버스를 탄다고 해도 5㎞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야 갈론마을에 도착한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마을은 보랏빛 저녁 공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이끼 낀 슬레이트 지붕, 녹슬고 부서진 대문, 비료부대와 낡은 농기구가 나뒹구는 마당, 그 마당 한쪽에서 놀고 있는 개, 오래된 시골마을의 풍경에서 시간이 멈춘 듯했다. 마을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고 나는 길은 그것 하나였다. 마을의 끝에서 길은 끊겼고 그 위로 계곡과 산이 이어진다. 막다른 길에 있는 마지막 마을이었다.
‘갈론마을’의 원래 이름은 ‘갈은마을’이었다. 어떻게 ‘갈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두 이름 다 살갑게 느껴진다. 해가 질 시간은 아니었지만 구름이 깔려 어두웠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됐다. 계곡은 길옆에 있다가 길과 하나가 되기도 했다. 너럭바위가 나왔다. 물결의 모양을 닮은 바위가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음이 녹은 여울에서 ‘쫄쫄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1m는 돼 보이는 물 속 바닥까지 보석처럼 맑고 투명하게 비친다. 물결이 이는 곳에서는 물 아래 보이는 돌멩이며 낙엽들이 물결 따라 흔들리며 추상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위와 맑은 물과 물 속 풍경과 놀고 있는 사이 주위가 어두워졌다. 마을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지만 어둠이 내리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는지 계곡 저 위에서부터 한기 서린 바람이 불어와 온 몸을 감싸는 듯했다.
- ▲ 1 아침 저녁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야 방에 온기가 돈다. 아궁이 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일행. 2 자연산 송이를 따서 말린 것을 주인 아주머니가 보여주고 있다.
계곡으로 올라갈 때만해도 마을에 인기척이 없었는데 어느새 집집마다 굴뚝 연기가 피어오른다. 어릴 때 시골 고향마을에서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는 아침과 저녁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집집마다 피어나는 굴뚝 연기와 나무 타는 향기에 고향이 떠올랐다.
고향집으로 들어가는 것 마냥 굴뚝 연기 피어오르는 어느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여행 왔다가 아궁이에 불 때는 것 좀 보고 싶어 들어왔다”고 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줌마는 낯설어 하는 기색 없이 웃으며 불 앞에 앉으라신다.
마당 한쪽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장작을 패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아궁이 한 가득 장작을 밀어 넣으신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우시더니 커다란 소 한 마리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오신다. 아줌마는 소 놀란다며 우리보고 얼른 비키란다.
소 이름이 ‘먹순이’란다. 잘 먹고 잘 자라고 일도 잘해 지어 준 이름이다. 지난 7년 동안 아저씨 아줌마와 함께 산 가족이다. 아저씨는 먹순이를 외양간에 넣어 놓고는 마루에 앉아 담배에 불을 댕긴다. 아궁이에서는 타닥거리며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린다. 가마솥 물이 설설 끓는다. 집 앞 산 아래는 어둠이 내렸다. 시골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고 있는 것이다.
- ▲ 벼를 베어낸 논.
그러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산이 첩첩 둘러싸여 있고 골이 깊다보니 산짐승들이 농사에 피해를 주는 일도 많단다. 멧돼지가 밭을 다 헤치기도 하고 고라니와 너구리는 마을 앞까지 내려와 다닌다. 그러나 이곳이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밀렵을 금지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이 산짐승 피해를 본다. 말을 잇는 아줌마는 산짐승 피해 때문에 농사 망친다는 안타까운 마음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송이 얘기를 또 꺼내신다.
송이 말린 것 하나를 1되 정도 되는 물에 넣고 끓이면 물이 노랗게 되는데 그 물을 따듯하게 차로 마시면 목감기에 좋다고 한다.
70년 전 지은 외양간과 행랑채 초가 건물을 개조해 만든 초가집 민박을 잡았다. 비록 개조한 초가집이지만 이엉을 얹어 지붕을 만든 초가에, 장작불에 온기 머금은 구들장에서 몸을 지지며 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저녁을 먹으며 민박집 주인아저씨에게 이 마을 유래를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 말씀에 따르면 원래 이 마을은 조선시대 당쟁의 광풍을 피해 은둔처를 찾아다니던 선비들이 첫발을 디딘 곳이다. 세월이 흐르며 이 마을은 몸을 숨기기 위한 은둔처에서 떳떳하게 땅을 가꾸며 살아가는 마을로 바뀌게 됐다. 나라에 공을 세워 토지를 하사받은 양반도 있었고, 날 좋은 날이면 문방사우를 지참하고 이곳에 와서 시겮춠화를 즐겼던 선비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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