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41] '남나비' 남계우

yellowday 2011. 12. 28. 21:18

 

입력 : 2011.12.21 22:08


 '남나비' 남계우



조선왕조의 철종 연간은 근대의 문턱이었다. 근대성은 사상과 물질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예리한 감수성의 예술가들은 동물적 감각으로 근대를 감지한다. 19세기 중반에 나타나는 신감각파의 이색적인 화풍은 이를 말해준다.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1811~1890)는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신감각파의 대표적 화가였다. 용인에서 태어난 그는 의령남씨 명문가 출신으로 소론의 영수였던 남구만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부사까지 지냈지만 세월은 여전히 소론에게 불리하여 그에겐 벼슬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이 56세에 감역(9품)에 제수되고, 72세에 가정대부(종2품)가 내려졌지만 실직에 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평생 초야에 묻혀 나비 그림만 그렸다. 그의 나비 그림은 앞 시대 화가들과는 전혀 달랐다. 극사실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했고 너무도 다양했다.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0)은 남나비의 작품 속에서 무려 37종의 암수까지 구별해 냈다. 그중엔 남방공작나비란 열대종까지 있다.

남계우는 예쁜 나비를 보자 갓 쓰고 도포 입은 채로 10리를 쫓아가 잡아온 적도 있었다. 잡아온 나비를 유리그릇에 넣고 관찰하기도 했으며, 수백 마리의 나비를 책갈피에 끼워놓고 이를 보고 그렸다. 나비를 창에다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유탄(柳炭)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하기도 했다.

남나비는 화폭의 경영에서도 대단히 근대적이었다. 나비의 배치는 비사실적인 구성이었다. 마티에르 감각도 탁월하여 금박지인 냉금지(冷金紙)를 즐겨 사용하였고 노란색은 금가루를,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하기도 했다. '화접도(花蝶圖)' 대련(사진)에는 남나비의 매력이 남김없이 들어 있다. 왜 나비만 그리냐는 물음에 그는 쓰르라미와 귀뚜라미는 가련한 벌레이지만 나비는 일생을 아방궁에서 살지 않느냐고 했다. 햇수를 헤아려 보니 올해는 그의 탄신 200주년 되는 해이다.    조일 국보순례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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