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39] 북산 김수철

yellowday 2011. 12. 8. 05:53

입력 : 2011.12.07 22:42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은 조선 말기에 등장한 베일 속의 화가다. 그의 생몰연대와 이력에 대해서는 아직껏 알려진 것이 없지만 북산은 동시대 누구와도 다른 독특하고 산뜻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데포르메이션이 일품이었다. 북산은 산이고 바위고 꽃이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변형시키면서 이미지만 강조할 뿐인데 그 감각은 거의 현대적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연꽃'(사진)에는 유탄(柳炭)으로 스케치했던 엷은 자국까지 들어 있다. 그래서 이동주 선생은 북산을 '신감각파'라고 했고, 안휘준 선생은 '이색화풍'으로 분류했다.

북산의 이력 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추사 김정희의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에 나오는 평이다. 1849년, 타계하기 3년 전 추사는 제자 중 화가 8명, 서예가 8명에게 작품을 제작하게 하고 일일이 품평해 주었다. 이때 북산은 화가 8명 중 한 명이었다.

추사는 북산의 그림에 대해 "구도가 대단히 익숙하고 붓놀림에 막힘이 없다. 다만 채색이 세밀하지 못하고 인물 표현에서 속기(俗氣)를 면치 못했다"는 평을 내렸다. 그의 필력은 인정했지만 채색과 데포르메이션에 대해서는 평가를 아낀 것이다. 그러나 북산의 특기인 핑크빛 감도는 색감은 동시대 감각을 훌쩍 뛰어넘어 마리 로랑생의 수채화가 연상될 정도로 환상적이다. 추사조차 간취하지 못할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북산의 그림을 보면 근대가 멀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북산과 동시대에는 학산 김창수(金昌秀)라는 화가가 북산과 거의 똑같은 그림을 그려 늘 이상스럽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동산방화랑의 〈조선후기 산수화전〉(13일까지)에는 '학산'과 '김수철' 도장이 나란히 찍힌 작품이 있어 이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둘은 동일인물로 김창수는 김수철의 초명이고, 학산은 북산이 처음 사용했던 아호였던 것이다. 북산 베일의 한 자락이 벗겨지는 순간이어서 놀라울 정도로 반가웠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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