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40] 우봉 조희룡

yellowday 2011. 12. 15. 00:16

입력 : 2011.12.14 22:34

19세기 전반기 예림(藝林)의 총수는 추사 김정희였다. 그리고 추사의 예술적 이상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서화가는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이었다. 우봉은 출신이 중인이어서 오위장(五衛將) 벼슬을 지냈을 뿐 이렇다 할 이력이 없다. 그러나 시서화 모두에 능한 당대의 문사였다. 그는 중인 문학서클인 벽오사(碧梧社)의 중심인물이었으며, 한때 헌종은 그에게 금강산 명승지마다 시를 지어오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또 역대 중인들의 삶을 기록한 '호산외사(壺山外史)'도 저술했다.

우봉은 추사의 충실한 제자였다. 글씨와 그림은 추사를 빼어다 옮긴 듯이 닮았다. 1851년, 추사가 또다시 북청으로 유배가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봉은 그 측근으로 연좌되어 신안군 임자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추사는 아들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우봉의 난초 그림엔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 구절은 오늘날까지 우봉의 예술을 평하는 데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그러나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자극을 주기 위해 가볍게 예를 든 이 사적인 편지가 제자 우봉의 평가에 치명상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 추사는 저세상에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우봉은 추사체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했다. 추사체의 거친 맛에 부드러움을 가했다. 그래서 추사의 글씨는 강하고 우봉의 글씨는 예쁘다. 추사가 못마땅했다면 그 점일 것이다. 화가로서 우봉의 장기는 매화 그림이었다. 그의 '홍매대련(紅梅對聯·사진)'을 보면 화면을 꽉 채우는 파격적인 구도, 강한 필치의 줄기, 춤추는 듯한 예쁜 꽃송이들이 어울리면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감동적인 명작이다. 거기에 예의 '예쁜 추사체'로 스스럼없이 써 내린 화제(畵題)는 그림 속에 문기를 더해 준다. 추사도, 당대의 그 누구도 이르지 못한 높은 경지의 문인화다. 우봉은 확실히 순조 헌종 연간 최고가는 화가였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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