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얼굴과 오동통한 팔다리. 이마가 드러나게 앞머리를 올려 깎은 엄마표 바가지 머리.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 깜찍한 여자아이가 지극히 불량한 눈빛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제목마저 발칙한 이 작품, '죽기엔 너무 젊다'(2001·사진)는 일본 미술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52)의 대표작. 지름 180㎝의 플라스틱 원반에 그린 것이다.
1990년대부터 많은 일본의 미술가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형식을 빌려 회화와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1960년대 팝아트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팝아트, '네오팝(Neo Pop)'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네오팝 아티스트, 나라 요시토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에 열혈 팬이 많이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이처럼 순진해야 마땅할 어린아이가 늘 어딘가 비뚤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다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 생각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이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다. '밥 대신 사탕을 먹는 것'처럼 어른들에겐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그들에겐 너무나 절실한 많은 일이 금지돼 있으며, 그들은 아직 금지된 것들에 대한 욕망을 다스릴 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쌓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죽기엔 너무 젊다 보니 그저 담배라도 피워 물고 소심하게 반항을 해봐야 할 것이 아닌가.
나라의 작품이 인기가 있는 것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서다. 고분고분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어른 대부분이 일탈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나라의 아이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뚤어져봐야 여전히 연약한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하며 말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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