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識 알면福이

존재없는 '한국 미술'

yellowday 2011. 11. 9. 04:09

손정미 문화부 차장대우

지난 27일 크리스티 경매를 앞두고 홍콩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프리뷰 전시장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컬렉터와 딜러, 작가, 미술평론가들로 들뜬 분위기였다. 경매 출품작을 미리 보는 프리뷰에서 눈길을 끈 것은 공중에 떠 있는 일본 현대미술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설치작품 '드래건 DOB'였다. 크리스티 경매를 홍보하기 위해 띄운 애드벌룬 같지만,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인 이브닝세일에 나온 작품이었다.

우선 이브닝세일에 작품으로는 영구성이 약해 보이는 '애드벌룬'같은 설치 작품을 내놓은 무라카미의 자신감에 놀랐다. 지난 4월
도쿄에서 만난 무라카미는 작가라기보다 전략가에 가까웠다. 1962년생인 무라카미는 2001년 미국에서 보여준 '수퍼플랫(Superflat)'이란 전시를 통해 하위문화로 머물던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기반으로 한 오타쿠 문화를 순수미술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카이카이키키(KaiKaiKiKi)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워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일본 작가들의 미술 작품에 대한 저작권과 해외전시를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번 이브닝세일에서 무라카미의 '드래건 DOB'는 추정가(180만~240만홍콩달러)를 훌쩍 넘긴 386만홍콩달러(약 5억7200만원)에 팔렸다. 무라카미와 비슷한 또래의
중국 현대미술 작가인 쩡판즈(46)의 유화작품 '가면 시리즈'는 약 45억8200만원에 팔려 이브닝세일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쩡판즈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국 작품은 추정가를 넘긴 가격에 낙찰돼 차이나 머니를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이날 이브닝세일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은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08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이브닝세일이 시작된 이후 한국 작품이 한 점도 오르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크리스티의 한 관계자는 "작년 이브닝세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백남준의 작품이 유찰되고 지난 5월 이브닝세일에서도 겨우 낙찰받는 수준이어서 이번에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실 한국 컬렉터들도 한국 작품을 사지 않는 상황이어서 작품을 올리기가 조심스럽다"고 털어놓았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의 이브닝세일은 한·중·일이 미술품을 두고 자존심을 겨루는 장이었는데 '한국'은 무대조차 없었던 것이다. 무라카미 같은 전략가도, 차이나 머니처럼 자기 나라 작가를 키우는 의지도 없는 한국 미술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만난 한 국내 화랑 대표는 "아시아 시장에서조차 한국의 존재감이 없어지고 있다"며 "미술품 양도세를 도입한다고 해서 걱정이 태산인데 이곳에 와 보니 한국 미술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캄캄하다"고 걱정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아시아 컬렉터들이 한국 현대미술 작품의 가치를 재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이번 홍콩 크리스티의 이브닝세일은 기대 속에서 경매 현장을 찾은 한국 미술인들에게 큰 충격을 남겼다.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