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강으로 살아 흐르는 시인이여 - 詩聖 타고르에게/이해인

yellowday 2011. 6. 14. 06:57

인도의 강가에서 태어나
강과 같은 시를 쓰고
인도인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아름답고 따뜻한 강으로
살아 흐르는 시인이여
인간은 흐르기를 그치지 않는
하나의 강이라고 말했던 시인이여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면서도 늘 새로우며
극히 평범한 것에도
늘 감동을 받는다던 당신은
신과 인간 자연과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한 시인이었으며
진리를 위해 고뇌한 구도자,
철학자, 사상가, 작곡가, 화가,
연극인이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4년후에 태어난 저는
소녀시절 처음으로 "기탄잘리"
"원정" "초승달"을 읽고
시인과 구도자의 삶을 꿈꾸었으며
"내 마음이여, 고요해 다오
이 커다란 나무들은 기도인 것을"
"별들은 자기네가 반딧불로 잘못
보이지나 않을까 걱정하진 않는다"는
당신의 말을 늘 짧은 기도처럼
외우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태어난 생가에서
당신의 숨결을 느껴 보고
당신이 세우신 숲속의 대학
나무 그늘에서
당신의 시를 큰소리로 외우는
나무 같은 학생들을 만나며
당신의 푸른 미소를 봅니다

"기탄잘리"를 쓰셨던 아담한 집
마루 끝에 앉아 보고
연극할 때 입으시던 낡은 옷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만져 보며
깊고 어진 눈빛의 당신이
제 옆에서 기침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머니, 꽃은 땅속의 학교에
다니지요. 꽃은 문을 닫고
수업을 받는 거지요"
당신이 산책을 했을 정원에서
"꽃의 정원"을 외워 보고
아름다운 바닷가를 거닐며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당신의 시 속에서 뛰어 놉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어린이들의 커다란 모임이 있다"는
그 목소리를 듣습니다

급변하는 현대의 물질문명에
사람들 마음이 미혹 당해
신과 평화와 사랑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괴로워했던 당신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숨고 싶어하며
일상의 작은 의무에 대한 충실성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끊임없이 예찬하고 동경했던 당신

비난과 오해의 폭풍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고독의 강이었던 시인이여
이제 당신은
겸허하고, 거룩한 목소리로
이 땅의 모든 시인을 부르십니다

항상 깨어 있는 정신으로
매일의 삶 자체를 사랑과
기도의 시가 되게 했던 당신은
우리도 강이 되라 하십니다

세계와 인류를 향해
사랑과 평화의 흐름을 멈추지 않는
길고 긴 시의 강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살아 있는 강이 되라 하십니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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