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왕국 서남부에 있는 거대한 도시, 혹은 그 도시 유적으로 '알카즈네(الخزنة, 보물)'가 보통 페트라 하나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페트라는 이거 말고도 주변에 여러 유적을 통칭하는 여기 도시 명칭이다. 알 카즈네 말고도 주변에 있는 여타 유적도 장난 아니게 정교하고 더 거대하게 남은 귀중한 유적이 꽤 된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알 카즈네[1]
알카즈네 다음으로 유명한 앗데이르(الدير, 수도원). 높이만 해도 대도시 빌딩 10층짜리만 한 곳이다.
또한 이렇게 야외 신전 유적이라든지 바위 곳곳을 깎아 만든 다른 건물들도 가득한데 모두 800여 개가 넘는다.
아랍계 유목민이던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 도시로서 붉은 사암(沙岩) 산을 깎고 내부를 파서 그대로 건물을 만들었기에 구조가 아주 특이하다. 대략 건물 모양이 바위산에서 부조로 조각된 듯하다. 페트라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6] 원래 나바테아인들이 불렀던 도시 이름은 레켐(Rekem)이었지만, 로마의 정복 이후 그리스인들이 붙인 페트라라는 이름이 쓰이면서 오늘날까지 페트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부터 도시가 번영했고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에 있어서 중개무역과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 등으로 번영을 누렸다.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까지 갖춘 시대의 첨단을 달리던 도시였고 기독교 성경에는 구약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에서 모세가 여길 통과해 가나안으로 나갔다는 기록도 있다. 그 후 좁은 협곡(السيق)을 무기삼아 로마군에게 몇 번이나 저항하였으나 우주방어에 빡친 로마 측이 수도관을 부수는 필살기를 시전해 기원전 63년에 항복해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가, 트라야누스때 속주로 편입된다. 그리고 363년에 난 지진으로 엄청나게 부숴졌으며 추가로 6세기경에 또 일어난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기원전 9년~기원후 40년에 나바테아 왕으로 재위했던 아레타스 4세는 갈릴리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의 장인이었는데 헤로데 안티파스가 자신의 딸을 버리고 제수 헤로디아와 결혼하자 이에 분노해 갈릴리를 침공했다가 로마의 중재로 물러나기도 했다. 또한 사도 바울로가 다마스쿠스에서 개심하고 예수에 대해 전파하자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의 의뢰를 받고 부하를 보내 바울로를 잡으려 하기도 했다.(고린도후서 11:32-33) 페트라 유적의 대표인 알 카즈네가 바로 아레타스 4세의 영묘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페트라의 유적은 로마의 영향권에 있을 때의 것으로서 건축 양식이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에 아람 지방에 고유한 스타일이 들어가 독특하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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