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석문(石門) / 조지훈

yellowday 2017. 8. 26. 06:51




석문(石門)  /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