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29 03:46
가을날 길을 가다가
수수는 붉게 늘어지고
콩잎은 노랗게 물들고
들밭은 얽히고설켜
온갖 색채 찬란하네.
저 멀리 메밀밭은
꽃이 마치 흰 눈과 같고
한 줄기 바람결에
한 줄기 향내 풍겨오네.
秋日行途中
薥黍紅垂荳葉黃(촉서홍수두엽황)
野田相錯盡文章(야전상착진문장)
遙看蕎麥花如雪(요간교맥화여설)
一陣風來一陣香(일진풍래일진향)
구한말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운양(雲陽)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 썼다.
1865년 운양은 충청도 청주 관아의 송하옥(松下屋)이란 이름의 책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들길을 찾아 나선 운양의 눈앞에 가을이 선뜩 다가왔다. 길섶에는 고개를 숙인 붉은 수수와 노랗게 물든 콩잎이 늘어서 있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얼키설키 갈라진
밭두렁 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색채가 찬란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갖가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들녘 저 멀리서 불쑥 눈이 내린 듯 하얀 밭이 생뚱맞게 나타났다. 메밀밭이다.
고담하고 정결한 빛깔이 현란한 색채보다 더 아름답다.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자 그 바람에 실려 메밀꽃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젊은 시인은 가을 정취에 한껏 젖어 들길을 걸어간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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