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6.23 04:00
[그림 속 그곳] 겸재 정선이 그린 철원 三釜淵
강원도 철원군청에서 삼부연로를 따라간다. 자동차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길가에 장쾌한 폭포가 나타난다. 높이 20m에서 흘러내린 물이 깊고 넓은 못을 이뤘다. 삼부연(三釜淵)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천 년 동안 마른 적 없었다는 폭포다.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못에 살던 이무기 세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은 300년 전 이곳을 찾았다. 서른여섯 살 때인 1711년 금강산 가는 길이었다. 6·25전쟁 전까지 철원은 금강산 가는 길목이었다. 당시는 대전에 맞먹는 큰 도시였다. 38선 이북 땅이었다가 전쟁 후 수복했다. 철원 북쪽 지역은 지금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땅이다.
겸재는 이듬해에도 금강산 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일흔두 살 때인 1747년 다시 원행(遠行)에 나섰다. 모두 세 차례다. 그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지금 남아 있는 그림은 1747년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해악전신첩'에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 너럭바위에는 갓 쓴 선비 넷과 수행원 둘이 서 있다. 겸재는 첫 여행을 스승 김창흡과 선배 김시보, 정동후와 함께했다. 네 선비는 이들일 것이다. 김창흡은 호를 삼연(三淵)이라 했다. 세상을 피해 한때 이곳에 은거한 김창흡은 삼부연에서 자신의 호를 땄다.
선비들이 섰던 바위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도로에서 철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안전 제일'이라고 쓴 가로막으로 입구를 막았다. 새로 뚫는 용화터널이 완공되는 9월 중 함께 개방한다고 한다. 철원군청의 허가를 얻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 위에 서니 폭포 줄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못 물에 손을 담그니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삼부연이란 이름은 '세 솥 못'이라는 뜻. 이렇게 이름 지은 까닭은 폭포 위에 서 보면 안다. 옛 용화터널을 지나 용화산 오르는 길로 15분쯤 걸으면 폭포 정상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물살이 굽이쳐 흐르며 만든 가마솥 같은 못 세 개가 보였다.
겸재 그림은 실제 삼부연과 비슷하지만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림이 실제보다 더 호방하고 웅장하다. 진경산수(眞景山水)란 실경(實景)을 그대로 베낀 그림은 아닐 터이다. 화가는 심안(心眼)으로 실제 풍경을 재구성할 권리가 있다.
한탄강 흐르는 철원 땅은 폭포의 고을이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과장된 별칭이 있는 직탕폭포가 인근에 있다.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폭은 80m에 이른다. 폭포 위에 놓인 다리 상사교(上絲橋)를 걸으며 걸음 수를 세니 모두 아흔 걸음이었다. 1억년 전 화산 지형으로 만들어진 고석정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를 바라본다. 래프팅하는 젊은이들이 "하낫 둘, 하낫 둘" 구호에 맞춰 노를 저었다. 단종 폐위에 반대한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다는 매월대폭포에도 들른다.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조닷
겸재 정선(1676~1759)은 300년 전 이곳을 찾았다. 서른여섯 살 때인 1711년 금강산 가는 길이었다. 6·25전쟁 전까지 철원은 금강산 가는 길목이었다. 당시는 대전에 맞먹는 큰 도시였다. 38선 이북 땅이었다가 전쟁 후 수복했다. 철원 북쪽 지역은 지금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땅이다.
겸재는 이듬해에도 금강산 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일흔두 살 때인 1747년 다시 원행(遠行)에 나섰다. 모두 세 차례다. 그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지금 남아 있는 그림은 1747년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해악전신첩'에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 너럭바위에는 갓 쓴 선비 넷과 수행원 둘이 서 있다. 겸재는 첫 여행을 스승 김창흡과 선배 김시보, 정동후와 함께했다. 네 선비는 이들일 것이다. 김창흡은 호를 삼연(三淵)이라 했다. 세상을 피해 한때 이곳에 은거한 김창흡은 삼부연에서 자신의 호를 땄다.
선비들이 섰던 바위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도로에서 철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안전 제일'이라고 쓴 가로막으로 입구를 막았다. 새로 뚫는 용화터널이 완공되는 9월 중 함께 개방한다고 한다. 철원군청의 허가를 얻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 위에 서니 폭포 줄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못 물에 손을 담그니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삼부연이란 이름은 '세 솥 못'이라는 뜻. 이렇게 이름 지은 까닭은 폭포 위에 서 보면 안다. 옛 용화터널을 지나 용화산 오르는 길로 15분쯤 걸으면 폭포 정상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물살이 굽이쳐 흐르며 만든 가마솥 같은 못 세 개가 보였다.
겸재 그림은 실제 삼부연과 비슷하지만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림이 실제보다 더 호방하고 웅장하다. 진경산수(眞景山水)란 실경(實景)을 그대로 베낀 그림은 아닐 터이다. 화가는 심안(心眼)으로 실제 풍경을 재구성할 권리가 있다.
한탄강 흐르는 철원 땅은 폭포의 고을이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과장된 별칭이 있는 직탕폭포가 인근에 있다.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폭은 80m에 이른다. 폭포 위에 놓인 다리 상사교(上絲橋)를 걸으며 걸음 수를 세니 모두 아흔 걸음이었다. 1억년 전 화산 지형으로 만들어진 고석정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를 바라본다. 래프팅하는 젊은이들이 "하낫 둘, 하낫 둘" 구호에 맞춰 노를 저었다. 단종 폐위에 반대한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다는 매월대폭포에도 들른다.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조닷
'釜山 *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나는 갯벌 체험에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고창 구시포 (0) | 2016.07.29 |
---|---|
얼음처럼 쪼개진 바위… 지친 마음 식혀줄 계곡으로 간다 (0) | 2016.07.22 |
"조선의 궁터와 21세기 도심 고층 건물을 품은 전망"…서울시청 '정동 전망대' (0) | 2016.06.20 |
김홍도 그의 畫帖 속을 노닐다 (0) | 2016.06.19 |
지리산의 마지막 원시계곡, 신비로운 비밀의 길을 가다 (0) | 2016.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