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김광섭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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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 정호승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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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성낙희
돌아왔구나
노오란 배냇머리
넘어지며 넘어지며
울며 왔구나.
돌은
가장자리부터 물이 흐르고
하늘은
물오른 가지 끝을
당겨올리고
그래,
잊을 수 없다.
나뉘어 살 수는 더욱 없었다.
황토 벌판 한가운데
우리는 어울려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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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간다
- 김억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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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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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 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 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무 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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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다에서
- 박재삼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것가.
2.
우리가 소시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편 문씨 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확실히 그 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언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달아 마음달아 젖느단 것가.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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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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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 신동엽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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