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21 10:16
천자문이 창조성을 죽였다
이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40대가 되어서다. 주역과 음양오행 사상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천지현황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검은색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현(玄)과 흑(黑). 흑(黑)이 물리적인 검은색이라면, 현(玄)은 추상적인 검은색이다.
천자문에서 ‘검을 현’은 추상적인 차원이다. 오방색을 봐라. 동쪽은 파란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빨간색이고, 북쪽이 검정색이다.
북쪽은 하늘을 가르킨다. 죽으면 북망산에 묻히고 하늘로 향한다. 북두칠성도 그렇다. 그래서 하늘이 검다는 거였다.
선불교에서 수행자들이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을 ‘현관(玄關)’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말하자면 천자문의 검을 현(玄)은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니다. 북쪽의 방위신을 현무(玄武)라고 하듯 방향을 가리키는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꺅” 소리가 절로 나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40년 전 서당에서 받은 구박이 해소되는 찰나였다. 그는 천자문이야말로 창조성을 죽인 원흉으로 본다. 천자문은 사물의 이치가
아니라 주입식 암기를 강요한다. 과거엔 천자문을 얼마나 빨리 뗐냐가 신동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불과 몇 달 만에 속성으로
달달 외우는 암기대장 꼬마가 생기면 온 동네의 경사였다. 신동이 탄생했다며 시루떡을 돌리고 동네 잔치를 벌였다. 그는 이런
풍조가 한국인의 창조성을 말살해 버렸다고 여긴다.
궁금함의 물음표가
깨달음의 느낌표로
바뀔때의 전율을 잊지 못해
“천자문은 원래 700~800년 전 중국에서 왕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거다. 이게 아시아 사람들의 인생 첫 공부가 돼 버렸다.
천자문을 뜯어보면 어른이 배우기에도 어렵다. 가장 흔히 쓰는 한자인 ‘봄 춘(春)’이나 ‘남쪽 남(南)’ 같은 한자는 누락돼 있다.
뜻도 모르면서 달달 외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천자문으로 공부해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무슨 상상력이 있겠으며,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있겠나. 또 이런 사람들이 무슨 지적 반란이나 패러다임 변혁을 일으킬 수 있겠나.”
훗날 그는 한자권 아이들이 배우는 한·중·일 공용한자를 제안하고, 80대에 들어서서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를 주도적으로
편찬하게 된다. 서당에서의 천자문 트라우마가 평생 그를 괴롭힌 탓인지 모른다. 이하생략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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