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05 06:44
[키 6m '그리팅맨' 세우러 南美로 떠나는 조각가 유영호]
파나마·페루·멕시코·브라질
올해 南美 4개국에 설치 예정
"이게 페루로 떠날 채비를 마친 작품이에요. 저기 오른쪽은 멕시코, 그 옆은 브라질로 갈 거고요."
지난달 30일 파주 광탄면의 한 공방. 조각가 유영호(51)가 크레인에 매달린 6m 크기 대형 사람 조각 세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하의 기온, 뽀얀 입김이 칼바람을 갈랐다. 소인국에서 뛰쳐나온 걸리버랄까. 성인 남자 키가 겨우 무릎에 닿을 만큼 대형 작품이다. 스머프처럼 파란 알몸으로 양손을 다리 옆에 붙인 채 허리 숙여 인사한다. 유 작가가 2007년부터 만들어온 '그리팅맨(Greetingman·인사하는 사람)' 시리즈다. 탄소강으로 뼈대를 잡고 그 위에 알루미늄 주물을 얹은 뒤 우레탄 컬러를 입혀 만든다. 실제 사람 몸집만 한 크기부터 26㎝ 소품까지 다양하다. 서울 롯데시티호텔명동, 마포 KPX케미칼 본사, KTX포항역 등 공공 장소에 설치돼 있다.
작가는 4년째 6m짜리 대형 그리팅맨을 세계 곳곳에 설치하는 '그리팅맨 글로벌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2012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를 시작으로 고향인 강원도 양구(2013년), 제주도 서귀포 다빈치뮤지엄(2015년)에 세웠다. 2016년은 꿈의 씨를 뿌린 남미에 본격적으로 작품이 설치되는 해. 오는 20일 파나마 파나마시티를 시작으로 페루 리마, 멕시코 몬테레이, 브라질 헤시피 등 4개 도시에 작품이 들어설 예정이다. 6일 첫 설치를 위해 파나마로 떠나는 작가는 "올해는 작가 인생에 두고두고 못 잊을 해"라고 했다.
허리 15도 굽힌 '한국식 인사법'
타인 배려하는 겸허한 태도 표현
"실향민이셨던 아버지 위해
북한 땅에도 설치하는 게 목표죠"
'한국식 인사법'을 작품 주제로 잡은 건 독일 유학 때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나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작가는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식 인사에 주목하게 됐다. "인사할 때면 자동적으로 허리를 굽히는 걸 독일 친구들이 흥미롭게 봤어요. 곰곰 생각해 보니 동양권에서도 허리 숙여 인사하는 나라는 우리하고 일본 두 곳밖에 없더라고요. 그중에서도 한국식은 허리를 90도 꺾는 일본식하고는 달리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맛이 있지요." 그리팅맨은 허리를 딱 15도만 굽힌다.
인사에 담긴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고개 숙이는 인사법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겸허한 태도인 거지요. 이념, 인종, 계층, 종교 같은 차이는 이런 배려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먼 곳에서부터 이 메시지를 퍼뜨리고 싶어" 서울의 대척점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그리팅맨을 세웠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인사하는 사람은 금세 지역 명물이 됐고, 남미 이웃 나라들에도 그 존재가 알려졌다.
작품 제작비는 자비로 충당한다. 후원 기업에 20만원짜리 26㎝ 크기 한정판 소품 1000개를 파는 방식으로 2억원을 모아 대형 작품 하나를 만들어 현지 설치까지 한다. 유 작가는 "국제적 인지도를 쌓아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가는 고작 몇 명밖에 안 되고, 상업 갤러리는 돈 되는 프로젝트 아니면 하지 않는다"며 "아이디어를 달리하면 자기 힘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는 걸 후배 작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글로벌 프로젝트의 마지막 목표지는 북한이다. "아버지가 평북 박천 출신 실향민이셨어요. 6·25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직업군인이 됐고, 예편하고 나서 고향 땅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사시겠다며 양구에 정착하셨어요." 8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은 아버지 발이 북녘을 향하도록 관(棺)을 묻었다. 눈감고서라도 한달음에 고향으로 달려가시라고.
"지구에서 가장 먼 우루과이에도 갔는데 정작 제일 가까운 북한 땅에는 못 갔어요. 아버지 대신 그리팅맨과 함께 꼭 북한 땅을 밟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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