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예술의전당서 발레 '오네긴' 열연… 국내 고별 무대
48세 나이에도 깃털같은 몸동작… 2人舞 할땐 미술관 속 名畵 보듯
마지막 장면에선 폭풍같은 오열
8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전막 발레 '오네긴'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커튼콜에서 애써 웃음 짓던 강수진은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다 끝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2200명의 관객이 모두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강수진의 눈가와 뺨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무용수와 스태프 80여 명이 한 명씩 무대에 나와 강수진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사하는 깜짝 이벤트가 이어졌다. 두 팔로 가득 꽃을 안은 강수진이 펑펑 울었다.
이날 공연은 강수진이 고국에서 펼친 고별(告別) 무대다. 그녀는 "이 공연을 끝으로 한국에서 다시 무대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내년 7월 이 작품의 독일 공연을 끝으로 그녀는 은퇴한다. 열아홉이던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지 꼭 30년 만이다.
강수진의 은퇴는 결코 기량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날 공연은 증명했다. 중력을 무시하듯 공중으로 솟구친 강수진의 몸은 한없이 가볍고 우아한 몸짓으로 허공을 부유(浮遊)했다. 오네긴 역 제이슨 레일리와 호흡을 맞춘 1막과 3막 파드되(2인무)는 미술관 속 명화(名畵)가 연속 동작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유려하고 황홀했다. 가녀린 손짓과 수줍은 표정으로 연기한 십 대 소녀의 들뜬 모습은 실제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오네긴'은 강수진의 발레 인생에서 특별한 작품이다. 그녀는 지난 4일 기자 간담회에서 "1996년 처음 공연했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고, 내 스타일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오네긴'으로 은퇴를 하게 돼서 기쁘다"고 했다. "더 활동할 수는 있지만, 작품을 100% 최고 수준으로 할 수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고도 했다.
- 발레리나 강수진이 국내 고별 공연인 전막 발레‘오네긴’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아래 원 사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모습. /뉴시스·조선일보DB
8일 공연이 끝난 뒤 분장실에서 강수진을 만난 한 무용계 인사는 "무대에서 울던 감정이 진정된 모습이었다"고 했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그곳을 찾은 국립발레단 단원들에게 "내일 봐요"라며 인사했다고 한다. '끝이지만 시작'이라는 본인 말처럼, 후진 양성과 발레단 운영에 전념하게 될 강수진의 새로운 삶은 이제부터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