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10-21 09:55 | 수정일 : 2015-10-21 10:53
주간조선 2377호에 포토뉴스로 실린 ‘예당호 사진’은 충격적이다. 오랜 세월 강태공들이 즐겨찾은 낚시터는 어느덧 초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호숫가에서 보트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접근이 되던 좌대들은 어느덧 쩍쩍 갈라진 ‘육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중부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하루 3시간 제한급수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42년 만의 가뭄 앞에 새삼 자연의 힘을 절감한다. 중부지방 주민들에게 창공(蒼空)은 황홀하게 아름답지 않고, 공활한 가을하늘은 야속하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우제를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과학기술과 IT가 발달해도 날씨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중부지방의 가뭄을 보면서 퍼뜩 세계사의 세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 나폴레옹과 관련된 것들이다. 첫 장면은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파리 개선문을 세우게 한 아우스터리츠(Austerlitz)전투다. 누구나 파리에 가면 개선문을 한 번쯤은 보지만 정작 이 전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발음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닐까. 1805년 12월 5일이었다. 나폴레옹군대는 9000명이 전사한 데 반해 반(反)프랑스동맹군은 2만7000명을 몰살시킨, 나폴레옹을 군사적 천재로 탄생시킨 전투가 바로 아우스터리츠전투였다. 이곳은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 근방에 있다. 이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나폴레옹을 도와준 게 새벽안개였다. 방어하는 쪽과 기습하는 쪽의 대치상태에서 연무(煙霧)는 누구에게 유리할까.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금방 답을 알 것이다.
이후 나폴레옹은 백전불패였다. 연승 행진에 도취한 나폴레옹은 교만하고 오만했던 것 같다.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겁도 없이’ 러시아를 쳐들어갔으니 말이다.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다 끝날 줄 알았던 나폴레옹은 쥐새끼들만 찍찍거리는 텅 빈 도시에 당혹했다. 거대한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았지만 때는 늦었다. 얼마 뒤 러시아의 겨울이 프랑스군을 역습했다. 프랑스 군대는 역사상 가장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엘바섬에서 귀환한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18일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영국의 웰링턴 장군과 대회전을 벌인다. 프랑스 군대는 막강한 포병과 기병에 더해 나폴레옹의 탁월한 전술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정적으로 날씨가 나폴레옹을 도와주지 않았다. 새벽에 비가 억수로 쏟아져 들판이 진창이 되어버렸다. 프랑스 포병이 사용한 유산탄(榴散彈)은 진창 속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워털루전투의 패배로 나폴레옹의 시대는 끝이 난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 아무리 지략이 뛰어나고 첨단무기로 무장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자연은 가끔씩 인간의 교만과 오만을 준엄하게 꾸짖곤 한다. 한국인은 물을 헤프게 쓰기로 유명하다.
중부지방의 가뭄은 물을 소중히 여겨달라는 자연의 뜻이 아닐까. 아무쪼록 가뭄이 빨리 해소되기를 간절히 빈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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