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04 05:47 | 수정 : 2014.12.04 06:12
[1] 전문가 5명 난상토론
"아래 세대 부담 키워선 안돼… 선별적 복지에 대한 합의 필요"
"국가도 자식도 老後 책임 못져… 4050(40~50代 세대), 애들 과외 줄여 연금 들어라"
- "중장년층, 빚 만들지 마라"
내 집에 지나친 투자 말고 연금은 절대 건드리면 안돼
그래야 '마지막 10년' 행복
- "노인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지나친 공경은 오히려 차별, 스스로 벌고 활동하게 도와야
90대 부모를 간병하는 70대 장모가 40대 사위에게 말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자기네와는 다른 인간들인 줄 알아.
노인도 맛있는 거 있으면 먹고 싶고, 아프면 울고 싶어. 젊은이들 보기엔 다 늙은 할머니라도, 그 옆에 누운 영감님한텐
하루라도 먼저 갈까 겁나는 애틋한 마누라야."
그 말씀에 찡해진 사위가 민주영(42) 펀드온라인코리아 팀장이다. 그는 "우리는 노인을 보고 '돌아가실 때 된 것 아니냐'
'그 나이 되면 삶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소리를 참 쉽게 한다"면서 "'마지막 10년'이 자기 문제라는 걸 온 국민이
깨달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고령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2015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 클럽'이 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의
'대국(大國)'이란 뜻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마지막 10년은 대체로 어둡다. 고려대 박유성 교수팀이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 동안에만 수명이 3년 늘었는데 그중 2년이 앓아누워 지내는 기간이었다. 노인 빈곤율(48%)은
OECD 평균의 네 배, 노인 자살률(65세 이상 인구 10만명당 64명)은 세 배다.
본지가 만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딱 10년 남았다"고 했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다.
국민 모두가 마지막 10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그 안에 큰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 일은 어쩌면 그동안 한국이 이룬 고속 성장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실장은
"함부로 복지를 확충했다가 다음 세대를 절망에 빠뜨리게 된다"고 했다. 김종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개개인의 노후는
최대한 스스로 책임진다. 국가는 그중 취약한 사람부터 선별적으로 보호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돈 없고 아프고 외로운 게 '마지막 10년의 삼중고'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이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중장년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본지 난상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선별 복지로 간다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위 세대의 고통을 덜자고 섣불리 아래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울 순 없다. 김종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류재광
삼성생명보험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민주영 펀드온라인코리아 투자교육팀장,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실장,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가 참석했다(가나다순).
◇가난이라는 낭떠러지
손성동=70대 이상 노인들의 가계 자산을 들여다보면, 지금 가진 돈으로 5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앞날이 큰일이다.
나쁜 시나리오는, 그분들이 점차 앓아눕고, 자식들이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저성장과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차차 연락을 끊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 결국 정부가 재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나이 든 세대는
'집단적 고려장'이라고 서글퍼하고, 젊은 세대는 '100만원 벌어서 얼마를 세금으로 내란 소리냐'고 반발할 수 있다. 세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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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민주영 펀드온라인코리아 투자교육팀장·김종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최문희 FLP컨설팅 대표·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실장·류재광 삼성생명보험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오종찬 기자
김종훈=우리는 그동안 '고속 성장'을 넘어 '과속 성장'을 했다. 국가가 차근차근 복지 제도를 갖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개인도 자산이 없고 부채가 있다. 주택을 구하려면 다들 부채가 생기는데,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집마다 빚도 못 갚고 저축도 어렵다.
지출을 줄이려야 줄일 수 없는 생활 방식이다. 40~50대 가장들이 지금 가진 부채를 털지 못한 채 60~70대까지 안고 갈 경우,
그 상태에서 근로소득이 끊어지면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그렇다고 국가가 옛날처럼 뭔가 밀어붙여서 해결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다 보니, 어떤 정책이건 '51대49'로 결정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뭘 해보기 점점 어려운 구조다.
◇몰이해
민주영=경제 논의만 해선 안 된다. 생각을 먼저 바꿔야 한다. 고령화 얘기가 나온 지 한참 됐지만 노인에 대해 몰이해가 심하다.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노인과 실제 노인 사이에 괴리가 크다.
최문희=사회가 빠르게 변했듯 노인도 빠르게 변한다. 편찮은 어르신도 많지만 건강한 어르신도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인=부양 대상'이라고 못 박아두려고 한다. 일방적 공경은 오히려 차별이다. 우리는 노인에게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계시라'고 한다. 뒷방으로 물러나란 소리다. 노인 인력을 활용해야 노인도 행복하고 사회도 잘된다.
◇낭떠러지를 피하는 법
류재광=한국 특유의 딜레마가 있다. 중국은 노인을 가족이 책임진다. 일본과 서구는 국가가 책임진다.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좀처럼 찾아가지도 않는다. 누구도 부모와 함께 살려 하지 않는다. 그럼 결국 일본이나 서구처럼 국가가 나서서 복지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금이 들어간다.
손성동=돈 많이 드는 제도를 섣불리 만들 수 없다는 게 어렵다. 국가적 대책도 찾아야겠지만, 개개인도 각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특히 40대 이하에게 '빚 지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지금 경제 상황에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는 건 '자폭' 행위다. 국민연금에 절대로 손대지 말아라. 국민연금 담보대출은 독약이다. 퇴직연금 건드리면 안 된다. 개인연금 해약하면 안 된다. 과외비 줄여야 한다. 투자 수익률이 가장 낮은 게 과외비다.
김종훈='내가 자식에게 이만큼 잘하고 있다'고 과시하듯 사교육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아이가 다니는 학원 등급이 엄마의 등급'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사람들을 피해라.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금융 사기 걸린 것처럼 헤어날 수가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연금을 들어서 훗날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 게 아이를 돕는 길이다. 그 돈으로 애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게 돕는다거나.
◇일본처럼, 제주도처럼
류재광=고령화 얘기가 나오면 다들 돈 걱정만 한다. 사실은 '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게 더 급하다. 일본에서 한때 대형 요양 시설을
엄청나게 짓다가 시행착오라는 것을 깨닫고 정책을 전환했다.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늙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도
행복하고, 국가도 부담이 작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이런 논의를 꾸준히 했다. 우리는 안 한다. 재원 마련하는 것보다,
이런 인프라를 만드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하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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