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탐사투어] 완도 보길도 일주
완도군에 속한 보길도는 제주도를 향해 먼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바로 이웃한 노화도와는 보길대교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활권이다. 보길도는 조선 최고의 풍류객이자 시인인 윤선도가 자주 찾고 노닐던 곳. 산은 높고 들은 작지만 곳곳에 해안절경이 펼쳐지고, 아늑한 해변도 여러 군데 숨어 있다. 일주도로가 없어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하는 것이 흠이지만 오갈 때 보는 경관은 사뭇 다르다.
- 예송리 언덕 전망대에서 바라본 갯돌해변과 상록수림. 왼쪽의 섬은 예작도, 마을 뒤 산은 적자봉으로 이어지는 수리봉이다.
1일차 : 노화도 동천항→이목항→보길대교→윤선도원림(세연정)→곡수당→낙서재→청별항 해안로→예송리(24㎞)
2일차 : 예송리→통리해변→중리해변→백도리→우암 송시열 글씐바위→중리선착장→청별항 해안로→정동리→정자리→선창리→망끝전망대→보옥공룡알해변→정자리 임도→부황리→보길대교→노화도 동천항(51.4㎞)
지난 3월 국민생활체육 동작구자전거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남도의 보길도를 찾아 나섰다.
- 완도 화흥포에서 타고 온 카페리는 노화도 동천항에 닿는다. 자전거와 자동차를 그대로 실을 수 있다.
아침 6시 동작구 노들역에서 20인승 바이크버스에 탑승해 출발한 지 6시간만인 낮 12시에 완도 화흥포항에 도착해 노화도 동천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과거에는 보길도 청별항으로 가는 배편이 있었으나,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가 생기면서 청별항으로 직접 가는 배편이 없어지고 노화도를 거쳐 들어가야 한다.
보길도로 가려면 먼저 노화도를 거쳐야
보길도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남 땅끝에서 노화도 산양진항으로 가는 길과 또 하나는 완도 화홍포항에서 노화도 동천항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어느 곳으로 가든 보길도로 가려면 노화도를 관통한 다음 보길대교를 건너야 한다. 산양진항에서 보길대교 입구까지는 7.6㎞, 동천항에서 보길대교 입구까지는 9.4㎞를 자전거로 통과해야 한다. 노화도는 보길도와 맞먹는 크기지만 평범한 야산과 논이 주를 이뤄 주민들이 사는 생활의 섬이다.
-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
반면 보길도는 높은 산과 해안 절벽, 백사장이 어우러져 노화도와는 판이한 경관을 보여준다.
노화도 이목항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보길대교를 건넌다. 보길대교는 두 개의 다리로 이어진다. 노화도에서 바로 앞 장사도까지와 장사도에서 보길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그것이다. 이 두 다리를 총칭해 보길대교라고 한다. 노화도와 장사도를 잇는 다리는 빨간색 아치 모양으로 한껏 멋을 냈지만, 장사도와 보길도를 잇는 다리는 그냥 밋밋하다.
보길도는 본래 노화면(지금은 읍)에 속한 섬이었지만, 1986년 보길면으로 승격되었다. 2008년 보길대교가 놓이면서 주민들이 쉽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 세연정을 지나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곡수당은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두 채의 건물로 개울가엔 돌다리와 ‘하연지’라는 연못이 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남서쪽으로 18.3㎞ 떨어진 보길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41㎞에 이르고, 고산 윤선도(1587~1671)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윤선도는 세상을 등지고자 결심한 뒤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던 도중 심한 풍랑을 만나 잠시 보길도의 황원포에 상륙했다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아예 눌러 앉았다고 한다. 윤선도는 이곳을 10여 년간 18번이나 찾으며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겼으며, 그의 유명한 작품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보길도는 아쉽게도 일주도로가 없다. 보길도의 관문인 청별항에서 출발하면 크게 네 갈래 길이 있다. 윤선도원림과 곡수당, 낙서재가 있는 부황리에서 부용리로 이어지는 길과 서쪽 뾰족산으로 가는 해안길. 그리고 남쪽의 예송리 해안길, 마지막으로 동쪽의 송시열 글씐바위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 곡수당 건너편에 있는 낙서재는 윤선도가 은둔하며 시문을 짓던 곳이다.
보길도는 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지 않아 투어가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아직도 동남쪽 끝의 예송리와 서남쪽 끝의 보옥리 구간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길도의 길은 들어간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첫날은 서울에서 보길도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을 소비해 부황리 윤선도 유적을 둘러보고 예송리에서 숙박할 예정이라 라이딩 거리는 짧다.
- 세연정은 담양 소쇄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손꼽힌다. 윤선도가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워 시를 읊고 자연을 노래한 곳으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가 탄생한 현장이다.
보길도는 서남쪽으로 망월봉(364m)-적자봉(433m)-수리봉(406m)-광대봉(310m)이 말굽형의 능선을 이루며 고산이 자리 잡았던 부용동을 감싸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산이 많고 가팔라 논은 거의 없다. 부용리와 부황리를 감싸 도는 하천이 북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약간의 논과 근래에 만들어진 월송리와 통리 사이의 간척지 논이 전부다.
보길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약 500m를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된다. 부황리 보길초등학교를 돌아 나가면 ‘보길도 윤선도 원림’이 나온다. 1000원의 입장료를 내면 ‘세연정’을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다.
세연정은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세연지에 단을 조성해 3칸짜리 정자를 짓고 세연정(洗然亭)이라 명명했다. 이곳은 윤선도가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워 시를 읊고 자연을 노래한 곳으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가 탄생해 유명한 곳이 되었다.
- 예송리의 갯돌해변은 이름처럼 작은 자갈로 가득하고, 물결에 데굴데굴 구른다.
세연정에는 물이 빙빙 도는 회수담, 손수 심은 고송, 큰 바위 옥저암, 개구리같이 생긴 혹약암,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굴뚝다리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세상의 때를 씻는다’는 세연지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에 판석으로 만든 보를 설치해 둑을 조성하고 자연적으로 수위조절이 되도록 조성한 연못이다. 조선 최고의 풍류가인 고산 윤선도는 자신이 즐기려고 만든 세연정에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노비들에게 술과 안주를 마차에 가득 싣게 하고 기생들을 거느린 채 술 한 잔을 걸치고는 어부사시사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당시 양반가의 풍류와 더불어 도탄에 빠진 민생과는 동떨어진 타락상도 엿볼 수 있다.
세연정에서 부용리 방향으로 2.3㎞ 가다보면 적자봉 아래에 ‘낙서재’와 ‘곡수당’이 있다.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곡수당은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두 채의 건물로 개울가엔 돌다리와 돌로 축조한 ‘하연지’라는 연못이 있다.
- (사진 왼쪽)갯돌해변 옆에 조성된 상록수림은 방풍림으로 수종은 대부분 동백이다. 숲 사이로 난 산책로가 운치 있다. (사진 오른쪽)중리해변은 사질이 단단해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릴 수 있다.
곡수당 위쪽에 지은 낙서재는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해 산맥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적자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그 높이와 향배를 헤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잡은 낙서재 입지는 보길도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고산은 이곳 낙서재에서 시문을 창작하고 독서를 하면서 은둔생활을 했다.
낙서재 건너편 산 중턱 절벽 위에는 부용동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는 ‘동천석실’이 위태롭게 걸려 있다. 마을에서 20분쯤 산을 타고 올라야 만날 수 있는데, 동천(洞天)이란 산천이 아름답다는 뜻과 신선이 사는 곳 또는 하늘로 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산은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절경이라 했고 절벽에 세운 한 칸짜리 정자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신선처럼 살았다고 한다.
- 중리해변을 뒤로 하고 ‘송시열 글씐바위’로 넘어가는 언덕길.
윤선도의 부용동 유적을 구경하고 예송리에 위치한 민박집으로 가는 길. 청별항의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거쳐 예송리로 넘어가는 언덕 전망대에 이르면 적자봉과 수리봉 아래로 활처럼 휘어진 예송리 갯돌해변과 마을, 그리고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멋지게 펼쳐진다.
예송리는 보길도 동남쪽의 바닷가 마을이다. 활처럼 휘어진 갯돌해변을 따라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오래 된 상록수림이 방풍림 역할을 하면서 길게 펼쳐져 있다. 수종은 대부분 동백나무로 선홍빛 동백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상록수림 안으로 산책로가 놓여 있어 조용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이 마을에 있는 250년 묵은 감탕나무는 높이 8.5m, 가슴 높이 둘레가 2.4m 가량 되며 따로 천연기념물 제33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사진 위쪽)마모되고 탁본에 얼룩져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운 ‘송시열 글씐바위’. (사진 아래쪽)제주도로 귀양 가는 8순 노객의 정한이 절절이 묻어나는 송시열의 글귀.
바닷가에는 모래 대신 동글납작한 검은 자갈이 가득 깔려서 파도가 밀려오고 나갈 때마다 물에 쓸리어 잘그락잘그락 소리를 낸다. 1.4㎞나 길게 뻗은 자갈밭과 그 뒤를 두른 상록수림, 바로 앞바다에 빤히 건너다보이는 예작도와 멀리 가물거리는 추자도와 제주도의 모습 등, 예송리 바닷가는 평온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하룻밤 묵은 예송리 민박집을 나와 언덕 전망대에서 다시한번 예송리 마을을 바라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정자 전망대의 왼쪽에서부터 기섬, 당사도, 소도, 복생도, 예작도 등이 차례로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소안도와 예작도, 당사도 등에 둘러싸인 예송리 해안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완도 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고 화려하다.
- 송시열 글씐바위’ 일대는 바닷가 암릉지대다.
예송리에서 나와 월송리로 가다 보면 삼거리 오른쪽으로 통리해변이 보인다. 다시 작은 언덕을 넘으면 중리해변이 연이어 펼쳐진다. 언덕을 기점으로 통리와 중리로 구분된다. 통리해변보다는 중리해변이 아늑하고 모래의 질도 훨씬 좋다. 또한 사질이 단단해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릴 수도 있다.
중리해변 동쪽의 포구 뒤쪽으로 산길을 넘으면 백도리 포구가 나온다. 포구에서 동쪽으로 난 외길을 따라 가면 가파른 언덕길이다. 언덕을 내려가면 선백도마을이고, 양식장 입구에 ‘우암송시열 글씐바위’ 이정표가 서 있다.
- (사진 왼쪽)통리에서 청별항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도로. (사진 오른쪽)시야가 탁 트이는 망끝전망대.
여기서 돌로 깔아놓은 산책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바닷가 암릉의 한쪽 석벽에 ‘우암 송시열 암각시문’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실제 암각시문은 바위를 타고 안으로 더 돌아가면 나무로 만든 계단 위쪽 석벽에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
우암 송시열은 83세의 고령에 당쟁의 희생자가 되어 제주로 유배를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 선백리로 피했다. 이때 “83세의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로 시작되는 한시를 남겼는데, 보길도 선백리의 ‘글씐바위’에 새긴 것이 바로 이 시다. 여기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큰 섬이 소안도이고 정면에 바로 보이는 곳이 소안도의 맹선리 포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맹선리 상록수림이다.
- 망끝전망대에서 바라본 보족산. 이름 그대로 뾰족하다.
송시열 글씐바위에서도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앞서 지나왔던 통리해변 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마을길로 접어들면 간척지 길로 갈 수 있다. 이어 월송리 포구에서 청별항으로 가는 아름다운 해안로가 기다린다.
청별항은 보길면사무소가 위치해 있는 중심지다. 바다 건너편으로 노화도 이목항이 바로 맞닿아 있고 보길대교가 잘 보인다. 이목항보다 규모가 작은 청별항은 2~3층짜리 자그마한 상가에 횟집과 모텔, 여관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99년 12월 마지막 날에 새해 아침을 맞기 위해 이곳 청별항에 처음 온 이후 14년 만에 다시 찾으니 기분이 새롭다. 하지만 보길대교를 빼고는 당시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 보족산 아래는 공룡알을 빼닮은 큰 돌이 뭉텅뭉텅 모여있는 공룡알해변이 신비롭다.
이제 마지막 코스는 보죽산(일명 뽀족산)으로 가는 해안길만 남았다. 예송리와 송시열 글씐바위 가는 길은 언덕구간이 각각 한 곳뿐이었지만 보죽산으로 가는 해안길에는 언덕길이 9개나 될 정도로 많다.
윤선도 원림이 있는 부황리 해안길을 따라 달리면 몇몇 마을이 나타난다. 대부분 양식업을 하는 어촌 마을이다. 남해의 풍경이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다. 거기에다 주변으로 크고 작게 보이는 섬들은 넓은 바다에 포인트를 준 듯 경치를 완성한다. 정동리 방파제 옆에 소나무가 제법 보이는 ‘솔섬’은 수반 위에다 소나무를 식재한 것처럼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정동리를 지나면 바로 정자리다.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동리와 정자리는 바로 붙어 있다. 윤선도가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정자리에서 부황리로 곧장 넘어가는 임도.
선창리 해안길을 달리면 보길도 제일 서쪽 끝에 위치한 ‘망끝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망끝전망대는 보길도의 가장 서쪽인 보옥리 바로 못 미쳐 망월봉 끝자락의 돌출부에 자리한다. 끝없이 탁 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망끝’은 그 옛날 아녀자들이 고기잡이 나간 남자들이 무사히 돌아오는지 근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추자도와 함께 갈도, 옥매도, 미역섬, 상도 등 다도해의 수많은 섬과 함께하는 일몰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망끝에서 2㎞ 더 가면 뾰족산이라고도 불리는 ‘보죽산’이다. 이름처럼 하늘을 찌르며 날카롭게 솟아 있다. 보죽산 너머에는 일명 ‘공룡알해변’이 있다. 크기가 큰 것은 핸드볼 공만하고 모양은 동글동글하다. 몇몇 돌들은 진짜 공룡 알처럼 생겼다. 이곳 사람들은 ‘깻돌’이라고 부른다. 해변 뒤로는 무성한 숲 공원이 있고, 벤치가 있어 편하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보옥리 공룡알해변에서 길은 끝이 나고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공룡알해변에서 뾰족한 보족산을 곁에 두고 바라보는 시원한 바다는 가슴이 트이는 청량제 같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배를 타러 서둘러 가야 한다. 정자리에서 부황리로 이어지는 임도를 넘어 보길대교를 건너 마침내 동천항에 도착하니 겨우 막배를 탈 수 있었다.
보길도는 모든 도로가 산뜻하게 포장되어 있어 자전거 타기에 그만이다. 평지와 언덕이 적당히 섞여 있어 자전거 여행의 묘미가 제법 쏠쏠하다. 언덕이 많아 힘들기도 하지만 다도해의 해안 풍광이 수려해서 고생은 헛되지 않다. 과연 고산 윤선도가 자연경관에 심취해 부용동에 연못을 파고 세연정을 세워 선유를 즐기며 불후의 명작인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남겼을 법한 아름다운 섬이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