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칼국수
15년정도 된 오래전 얘기지만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몇자 적어본다.
우리 큰아이가 1985년도에 초등6년이였다 하여 856會란 이름으로 각반 대표 15명이 조직한 모임이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회계사가 된 남학생중 막내가 제일 먼저 결혼을 한다고
학부형 전원이 부산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 5시경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결혼식은 관악구 봉천동 삼성산성당에서 낮 12시에 있었다.
우린 그동안의 시간을 죽일량으로 일단 남대문 새벽시장 구경을 하기로 하고 행차를 하였다.
지금 기억으론 아마 그 때부터 검은 옷이 유행이 되지 않았나싶다.
온통 검은옷이 가게마다 진열되어 있었던것 같다.
일단 시장구경을 마치고 서울대학교가 있는 봉천동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봉천동 비탈길에 자리한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 방 하나를 얻어 여장을 풀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있고 퀘퀘한 냄새까지 역하게 나는...과연 여기가 서울인가 할정도로 실망스러운 여인숙~
그래도 몇시간만 있다 나갈꺼니까 참았다.)
아침이 오기를 기다려 오전 10시쯤 되어서야 봉천시장으로 (시장에는 왠지 먹을꺼리가 있을것 같아...)
혹시 아침밥을 파는 식당이 있나하고 어슬렁거리며 내려갔다.
지금이야 해장국집도 있고 편의점도 있어 아침을 해결할 방법이 여럿 있지만
그때만 해도 식당은 모조리 문이 닫혀있고 봉천동 산꼭대기라 식당도 빵집도 없던 시절이였다.
한참을 내려오다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러 열린가게 하나를 발견하고는
일단은 반가웠지만,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기러기칼국수집이었다.
낯선 음식이라 과연 우리 입맛에 맞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일단 숫자대로 시켰다.
한참을 기다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가 먹음직스럽게 셋팅이 되는게 아닌가
기러기 고기맛이 어떨까? 궁금해할 새도 없이 폭풍흡입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담백하고 칼칼한 칼국수 맛이 처음 접하는 우리 입맛을 완전 넉다운 시켰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러기는 철새일뿐 음식에 넣어 먹는줄 몰랐는데 기러기도 꿩처럼 사육을 해서 식용으로 쓴다고 했다.)
그 후론 아직 기러기 칼국수집을 만나지 못했으며 다시 기회가 되면 먹어보고싶은 음식이다.
진실한 카돌릭 집안인 우리 모임의 제일 큰 형님네 아들은 삼성산 성지(성당) 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 둘을 낳아 벌써 중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미국에서 국제회계사까지 따와
유수한 법무법인 회계사로 근무하고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불현듯 그날의 칼국수 맛이 떠올라 몇자 적어보았다.
그 때가 참 좋은 시절이였다! yellow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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