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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기계' 일본, 김연아 넋 놓고 보는 이유

yellowday 2013. 11. 7. 12:03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일본은 직설적인 표현을 꺼리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좋아도 좋다고 표현하지 않고, 싫어도 싫다고 내색하지 않은 채 모호한 행동으로 일관한다. 이 때문일까. '원초적인 희로애락' 표현에 미숙하다.
감정표현 미숙은 예술성을 강조한 피겨 스케이팅에선 마이너스다. 해외 평론가는 일본 선수들을 가리켜 "점프-점프-점프밖에 없다"며 "기술을 우선시한 20세기엔 통했지만, 지금은 기술과 표현 예술의 균형을 강조하는 21세기다. 일본 선수들의 기교는 훌륭한 반면, 영혼의 울림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 일본 피겨 선수와 김연아의 격차는 표현력에서도 나온다. ⓒ 연합뉴스

실제로 일본 선수들은 기계적이다. '트리플 악셀 마스터' 이토 미도리를 비롯해 '꽈배기 악셀' 아사다 마오에 수구리 후미에, 나카노 유카리, 안도 미키, 스즈키 아키코, 무라카미 카나코 등 일본이 배출한 피겨스타는 모두 '표현력'에서 의문부호가 붙었다.

일본 피겨계가 김연아의 능숙한 표현력을 부러워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김연아의 희로애락 표현은 자연스럽고 거침없다. 김연아는 점프 성공 직후 두 팔을 번쩍 들어 기쁨의 세리머니도 보여준다.
전설이 된 '죽음의 무도' 쇼트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다. 트리플 러츠 직후 학의 날갯짓 포효를 했다. 또 죽음의 무도 시작 장면에선 스케이트 날을 세워 얼음을 콕콕 찍는 소름 돋는 스텝을 구사했다. 깊은 밤 해골들의 무도회를 알리는 카미유 생상스 죽음의 무도 교향시를 추상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다.

역대 최고의 프리 스케이팅으로 평가받은 '조지 거쉰'도 김연아만의 천부적인 표현력이 살아있다. 트리플 살코 실행 직전 두 손을 콕 집는 안무가 재미있다.
섹시의 극치 '007 본드 걸' 쇼트도 강렬한 잔상이 있다. 김연아는 연기 도중 손가락을 총구처럼 만들어 빙판에 한 방, 중계 카메라를 향해 한 방 쐈다. 기술과 기술 사이 추임새를 넣어 관중의 흥을 돋우는 명장면이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본드 걸'로 변신했다면 박력 있게 총 쏘는 안무는 생략됐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아사다 안무 색깔은 옅다. 팔 동작은 흐물흐물 거리고 얼굴은 시종일관 굳어 있다.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현력이 떨어져 너무 아쉬운 선수 중 하나다.

이처럼 일본 피겨 선수와 김연아의 격차는 표현력에서도 나온다.캐나다 공영방송 CBC 캐스터는 지난 2009 세계선수권 당시 "김연아의 안무 표현은 디테일하다"며 "배경음악에 맞춘 섬세한 연기, 사연 및 목적 있는 감정표현을 주목하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어 "한국이 배출한 월드스타, 죽음의 무도에서 보여준 기세는 빙산의 일각일 뿐, 앞으로 더 많은 재능을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CBC 캐스터의 예언은 적중했다. 김연아는 1년 뒤 밴쿠버 올림픽에서 피겨 1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228.56점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김연아는 '올림픽 2연패'를 바라보고 있다. 발등 뼈 부상을 딛고 일어선 김연아는 다음달 5일부터 8일까지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특유의 국민성 때문에 세계적인 안무가를 데려와도 일본 선수들의 예술성은 단숨에 향상되긴 어렵다. 일본 피겨계가 표현에 능한 김연아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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