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 사이에 끼어 왕위 지키기에 급급, 국제 정세 변화 읽어내지 못했던 인조
역사평설 형식으로 병자호란 전말 그려
역사평설 병자호란 1·2
한명기 지음|푸른역사|각권 396쪽|각권 1만5900원
747만명이 본 영화 '최종병기 활'(2011년 개봉)에서 신궁(神弓)으로 나오는 박해일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무사들을 죽이고 압록강 너머로
끌려가는 누이동생을 구해 돌아온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해피엔딩이 아니라, 더 참혹한 비극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청 태종이 "압록강을 건너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다음에 조선으로 도망쳐오는 자는 조선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는
항복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청은 도망자를 가혹하게 다뤘다.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 신하들이 청나라에서 조선인 도망자의
발뒤꿈치를 잘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쓴 보고가 그렇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전작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년)에 이어 '역사평설' 형식으로 병자호란의 전말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
정권 안보'에만 급급해 명과 후금의 세력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인조와 반정공신들의 무능과 고집, 1627년 정묘호란으로
임금이 강화도로 도망가는 위기를 겪고도 10년간 즉흥적인 미봉책으로 세월을 낭비한 대목들이 그렇다.
- 병자호란을 그린 영화 ‘최종병기 활’.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넌 만주 철기병은 닷새 만에 수도 한양까지 진격할 만큼 가공할 만한 기동력을 발휘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한 달 보름 농성전을 벌인 끝에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1623년 3월 14일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으로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의 은혜를 배신한 것"을 꼽았다. "후금을 친히 정벌하겠다"는
장담도 했다. 기울어가는 제국 명(明)에게 조선은 '굴러들어온 봉'이었다. 명은 인조 책봉을 2년 2개월간 끌면서 후금과 싸우는 데 병력과 물자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1622년부터 후금을 친다며 평안도 앞바다 가도에 진치고 있던 명나라 모문룡이 화근이었다. 평안감사 윤훤이
"온 나라 식량 절반이 모문룡 휘하에 넘어가고 있다"고 통탄할 정도였다. 1626년 누르하치 사후, 칸에 즉위한 태종은 권력 기반을 다지고,
명 공격에 앞서 후방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이듬해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오랑캐'를 형으로 받드는 조건으로 화친한 인조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이후 10년간 명은 여전히 조선을 압박했고, 날로 강성해지는 후금 또한 형제의 맹약을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조선은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등 터진
'새우'였다. 후금은 1633년 명나라 장수가 항복해오면서 수군(水軍)과 병선(兵船)까지 얻었다. 1636년엔 만주, 몽골, 한인(漢人) 신료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됐고, 대청(大淸) 제국을 선포했다. 정보력이 뒤졌던 인조는 청이 침략해 오더라도 강화도로 피란 가서 장기전을 벌이면 승산이 있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했다. 해전(海戰)에 취약한 청이 약점을 보강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인조는 청의 속전속결 탓에 강화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인조가 아무리 대비를 강화했다고 해도 청의 침략을 막아낼 군사력을 갖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려 무신정권이 세계를 휩쓴 몽골 침략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차선(次善), 차차선(次次善)은 없었을까. 저자는 이 사건에서 배울 교훈은 힘을 키우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과 G2로 부상한 중국, 경제 대국 일본에 둘러싸인 우리나라가 경제력과 군사력, 문화적 매력에서
주변 열강이 무시할 수 없는 '근사한 민주국가'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힘은 디테일에 있다. 1625년 인조를 책봉하기 위해 온 명나라 사신들의 행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조선의 처지를 민낯으로 보여준다.
16만냥 가까운 은을 챙겨간 이들 때문에 재정이 초토화돼 일본 침략을 막기 위한 수군(水軍) 배치까지 중단하자는 건의가 나올 정도였다.
명과 후금, 일본의 정세 변화를 함께 얽어 정묘·병자호란을 동아시아의 틀에서 읽어내는 시야의 확대도 돋보인다. 참고문헌은 밝혔으나,
주(註)는 생략해 소설책 읽듯 술술 넘어가게 만들었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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