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양천 현감' 정선(鄭敾)

yellowday 2013. 8. 23. 06:30

 

입력 : 2013.08.23 03:06

한국 미술사에 손꼽히는 화가 겸재(謙齋) 정선이 양천 현감에 발령받은 것은 1740년 가을 예순다섯 살 때였다. 부임 얼마 후 그는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으로부터

한시(漢詩) 편지를 받았다. "홀로 떨어져 있다 말하지 말게/ 양천에 흥이 넘칠 터이니…." 겸재는 바로 붓을 들었다. 그가 다스리는 양천 관아 풍경을 일필휘지로

그려 사천에게 보냈다.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1동 239번지 일대 주택가다.

 

▶겸재와 사천은 한양에서 헤어지며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을 약속했다. 사천이 시를 써 보내면 겸재는 그림을 그려 서로 바꿔 보기로 했다. 시와 그림이 꾸준히

오가며 열매 맺은 것이 조선 회화사에 빛나는 '경교(京郊)명승첩'이다. 화첩에는 만년의 겸재가 한강 명승들을 원숙한 필치로 그린 서른세 점과 사천의 시가 들어

있다. 겸재는 화첩 곳곳에 '千金勿傳(천금을 준다 해도 남의 손에 넘기지 말라)'이라 새긴 도장을 찍었다. 자손들이 대대로 간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만물상 일러스트

▶옛말에 "양천 원님은 부임할 때 울고 떠날 때 운다"고 했다. 양천은 한강 하류에 있어 수해가 잦은 데다 변변한 농경지도 없었다. 그러나 서·남해안으로

통하는 육로와 뱃길의 길목이어서 물자가 풍성했다. 어느 해 경기 지역을 감찰한 암행어사가 겸재를 '謹拙居官(근졸거관)'이라 평가한 보고서를

영조에게 올렸다. "양천 현감은 신중하며 재주 부리지 않고 순박하다"는 뜻이었다.

 

▶화가 겸재를 기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양천의 수려한 풍광이었다. 밝은 태양과 냇물이 아름답다는 '양천(陽川)'의 뜻 그대로였다. 소요정 이수정 소악루

귀래정 낙건정 개화사 선유봉 양화진…. 겸재는 '경교명승첩'과 별도로 '양천 8경'을 화첩으로 남겼다. 겸재는 양천에 간 덕에 명작을 낳았다.

그리고 양천은 겸재라는 걸출한 화가를 만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경들을 후세에 전할 수 있었다.

 

▶서울시가 강서구 마곡동·가양동 일대 여의도 두 배만 한 미개발지를 2016년까지 세계적 화목원(花木園)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옛 양천 고을에 속했던 지역이다. 서울시는 "겸재가 양천 현감 때 그린 풍광을 화목원에 재현하겠다"고 했다. 겸재가 감탄하고 사랑했던

양천 풍경들을 되살려 보겠다니 반갑다. 한편으론 토목 공사를 하듯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려다 보면 겸재 그림의 품격과 아취(雅趣)를 살릴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긴 안목을 갖고 처음부터 사업의 방향과 방법을 잘 잡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      조닷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北 마식령 스키장  (0) 2013.08.26
중국식 재판  (0) 2013.08.24
한자 못 쓰는 중국인  (0) 2013.08.22
가림막 뒤 국정원 직원  (0) 2013.08.21
短身의 질주  (0) 201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