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人物

빅토르 위고

yellowday 2011. 4. 9. 17:26

빅토르 위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기상천외한 인물이었다. 장수하며 방대한 문학 작품을 써낸 작가이자 재능 넘치는 데생 화가이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정치인이자 만족할 줄 모르는 만인의 연인으로 ‘세기의 전설’이었다. 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으며 (…) 급작스럽게 정치적 성향을 바꾸면서도, 인도주의적인 자신의 신념만큼은 충실하게 지켰다. 정치적이기보다는 이상주의적이었던 그는 ‘권력가’라기보다는 자유와 정의를 섬기는 ‘사상가’였다.”(델핀 뒤샤르)

 

 

출생과 성장, 그리고 명성

빅토르 마리 위고는 1802년 2월 26일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의 휘하에서 군인으로 출세가도를 달려 장군까지 진급한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의 여러 도시로 이사를 다녔다. 훗날 부친의 바람대로 대학에 진학해서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빅토르는 시작에 몰두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불과 14세 때인 1816년 7월 10일자 일기에서 위고는 당대의 저명한 작가 겸 정치가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을 의식한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긴다. “샤토브리앙처럼 되고 싶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닮고 싶지 않다.”

 

위고는 소꿉친구인 아델 푸셰와 결혼한 해에 낸 첫 시집 [오드](1822)로 주목을 받았고, 희곡 [크롬웰](1827)과 시집 [동방시집](1829)을 간행하고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크롬웰]은 고전주의 연극의 신조였던 이른바 ‘삼일치의 법칙’(행위, 시간, 장소의 통일)을 과감히 깨트린 작품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당대에는 워낙 파격적이어서 상연이 불가능했지만, 그 희곡의 ‘서문’이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위고는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희곡 [에르나니](1830)는 객석에서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자가 저마다 야유와 박수를 보내는 대소동의 와중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1831)은 소설가로서 위고의 명성을 확고히 해 주었다.

 

위고는 1830년대에 프랑스 문단에서 낭만주의의
선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1835년의 초상화                                      yellowday 옮김                                                                               


1832년에 위고는 쥘리에트 드루에라는 여배우를 처음 만났고, 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된 두 사람의 불륜 관계가 시작되었다. 위고의 생애를 이야기하려면 그 주위의 수많은 여인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녀를 넷이나 낳은 본처 아델은 남편의 외도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자신도 비평가 생트뵈브와 외도 행각을 벌였지만, 그래도 40년 넘게 꿋꿋이 가정을 지켰다.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위고의 애정 행각은 말년까지도 계속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웠던 애인은 [레 미제라블]의 원고를 정서하고 망명지까지 따라가는 등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쥘리에트였다.

 

1841년에 위고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지만, 1843년 가을에 제일 아끼던 딸 레오폴딘이 익사하는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우울증에 시달린 위고는 작품 활동을 한동안 중단했다(문학사가 랑송은 만약 위고가 이날 이후로 완전 침묵했다 하더라도 문학사에서는 이미 확고한 위치를 마련했을 것이라 단언한다). 대신 정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위고는 왕실과의 친분으로 1845년에는 자작 작위를 받지만, 그해 여름에 여배우 레오니 당트와의 간통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는 굴욕을 맛본다. 이후 그는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한 채 대작 [레 미제라블]의 집필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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