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 |
857년 경주 사량부 | |
미상 가야산 해인사 | |
신라 | |
자는 고운 또는 해운 | |
885년 한림학사 | |
학자, 문인 |
최치원(崔致遠, 857년~?)은 신라 말기의 문장가,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혹은 해운(海雲)이다.
난랑비서문(鸞?碑序文)이 《삼국사기》를 통해 남아 있다. 우리말 고문(古文)으로 된 천부경(天符經) 한문 번역본을 남겼다는 주장이 있다.
868년(경문왕 8년) 당나라 유학을 떠나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에 과거에 급제, 선주 율수현위(宣州 水縣尉)가 되고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에 올라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874년 빈공과에 급제하였다. 황소의 난 당시 이를 비난하는 토황소격문을 지었다.
884년 음력 10월 귀국했다. 885년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지서서감(知瑞書監)이 되었으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태산(太山 : 지금의 전북태인)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여 조(條)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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