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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관료·기업인 건의로 밀어붙여… 미국은 오히려 제철소·공단 짓는데 반대"

yellowday 2013. 3. 29. 05:52

 

입력 : 2013.03.29 03:02

[논란 영상 '백년전쟁'은 "한국의 수출주도 전략이 美의 작품" 이라는데…]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돈 궁했던 박정희 대통령, 일본서 청구권 자금 받고 서독 차관 얻어 공단 건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져온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은 일본의 수출 지향적 산업화를 모델로 삼은 경제 관료와 기업인의 건의를 박정희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지나치게 수출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박정희는 미국의 반대를 뚫고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52·정치학)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영상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 편이 내세우는 "한국의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은 미국이 구상한 것"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1961~65년의 경제정책 전환 과정을 사료를 통해 치밀하게 분석한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1차 5개년 계획과 무역입국'(2006년)이라는 저서와 관련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에 대해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에‘백년전쟁’이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완범 교수. /이덕훈 기자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은 누가 주도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

"5·16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박정희에게 '경제개발' '수출 진흥'이란 생각은 없었다.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답게 '농촌진흥'을 중시했다. 하지만 장면 정부가 세워놓은 경제개발 계획에 자극받고 미국의 종용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하게 됐다. 초기에 이를 주도한 유원식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과 박희범 서울대 상대 교수 등 군부 실세와 경제학자들은 내수를 통한 자립 경제를 지향하는 내포적 공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지하자금 양성화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던 화폐개혁이 실패하자 상공부의 박충훈 장관·김정렴 차관·오원철 국장 등 경제 관료와 이병철 삼성 사장, 전택보 천우사 사장 등 기업인들이 일본의 성공 사례를 들어 수출 중심으로의 전환을 건의했고 박정희가 이를 수용했다. 박정희는 1964년 6월부터 청와대에서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했고, 1965년 연두교서를 통해 '증산·수출·건설'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백년전쟁' 뒷부분에도 나오는 박정희가 현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나를 따르라'고 진두지휘하는 장면은 이때의 모습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박정희 외에도 관료·기업가·노동자·농민의 공동작품이지만 군대식으로 밀어붙인 박정희의 리더십이 중요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미국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박정희 정부 초기에는 환율 현실화를 요구하고 재정안정 계획을 추진하는 등 수출에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수출 중심 국가로 가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미국이 바란 것은 국제수지 개선과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의 안정이었다. 그래서 한국이 종합제철소와 울산공업단지 등을 만들려고 하자 미국은 한국에는 그런 큰 공장이 필요 없다고 반대했다. 미국이 자금을 제공하지 않자 박정희는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받고 서독에 가서 차관을 얻어와 이를 추진했다."

―'백년전쟁'은 로스토·번스타인 등 미국 경제학자와 관료가 박정희의 '경제 가정교사'였다고 주장하는데.

"로스토는 후진국 경제 발전의 이론을 펼친 사람일 뿐 한국은 잘 몰랐다. 번스타인은 주한 미국대외원조처 책임자로 박정희에게 많은 조언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집권 초기에 경제 문제를 미국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던 박정희는 미국이 불평하자 미국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지만 그들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백년전쟁'은 박정희가 생각했던 수출은 고작 토끼털·생선·돼지 정도였고 제조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1962~63년의 상황만 보면 그랬다. 하지만 박정희는 곧 기업가들의 권유로 합판·가발 등 보세가공업에 눈을 돌렸고 수출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어 제철소·정유공장도 만들고 고속도로도 건설했다. 우리 경제 발전 과정과 박정희의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파악해야지 초기의 한 장면만 잘라서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일면적인 역사 인식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