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43] 네덜란드 정물화

yellowday 2013. 1. 5. 07:11

17세기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위치는 특별했다. 스페인으로부터 1648년에 독립한 네덜란드는 주로 칼뱅교인 신교(新敎)의 나라였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운 무역국가였을 뿐 아니라 국제 중계무역의 중심이었다.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들은 번창했고 도시의 부유한 중산층은 미술의 주요 고객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이미 전문적인 화상이 등장하면서 화가들의 그림을 받아 고객에게 팔아주는 근대적인 유통구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산층이 주로 구매한 그림은 어려운 역사화보다는 알기 쉽고 보기 좋은 정물화·초상화·풍경화 등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

클라스의‘정물’.

당시 중산층이 선호하던 정물화 중에는 아주 정밀하게 그린 식사 후의 식탁 그림들이 많았다. 클라스(Pieter Claesz· 1596~1661)가 그린 '정물'(1643)에서 화려한 은주전자와 접시, 고급 유리잔 등이 놓여 있는 식탁은 보통 가정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접시 위에는 가재요리, 빵, 또 당시에는 매우 비싼 과일이었던 레몬 등이 어지럽게 남아 있어 마치 누군가 먹다 중간에 급히 떠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얼핏 보면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그림은 다양한 형태와 질감을 고려한 배치, 계산된 구성으로 심사숙고하여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빛을 통해 세밀하게 관찰하여 생생하게 그린 정물들을 하나하나 보는 것은 눈을 매우 즐겁게 만든다.

이 정물들은 그냥 묘사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남아서 상해가는 음식들, 반쯤 채워진 유리잔, 옆에 놓여 있는 시계 등은 무상(無常)함과 일시성, 또는 죽음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겉모습과는 달리 먹어보면 신맛이 나는 레몬 역시 성(性)을 시사하는 과일로, 흔히 매춘부의 집 그림에 등장한다. 이렇게 매혹적인 그림을 즐기면서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는 인생의 덧없음을 늘 상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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