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커스.
포도 덩굴로 머리를 장식한 인물이 베개에 몸을 기대고 포도주 잔을 내밀고 있는 이 그림은 1600년 전후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작품으로, 그림 속 인물은 주신(酒神) 바커스다. 신화적 주제라기보다 거의 일상생활 속의 한 장면을 그린 것 같은 이 그림에서 바커스의 발그레한 뺨과 부드럽고 매끄러운 얼굴은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근육적인 팔의 표현에서 남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양성(兩性)적인 바커스는 비스듬히 앉아 마치 술과 과일을 권하는 듯, 관람자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다. 관람자는 유혹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험을 감지한다. 술은 물론이지만 시간이 가면 썩는 과일 역시 일시적 쾌락의 상징으로, 어떤 것들은 이미 누렇게 변해 있다. 이 그림의 의미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양성애자(兩性愛者)로 알려진 카라바조의 성 정체성과 관련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카라바조는 종교화도 다수 제작했다. 그는 종교화에서도 성인(聖人)을 일상생활 속의 지저분하고 평범한 서민같이 그려 물의를 일으켰다. 초인적인 위엄을 느끼게 했던 그 이전의 성인의 표현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 명암 대조와 세밀한 사실주의, 그리고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카라바조의 화면은 새로운 종교화의 탄생을 알려주었다. 이와 같은 종교화의 혁신성은 그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러나 난폭한 성격을 다스리지 못했던 카라바조는 번번이 싸움과 논쟁을 벌였고, 한번은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해 여러 도시로 피해 다녔다.
시대의 풍운아였던 카라바조는 생애 말기에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 치켜들어 앞으로 내밀고 있는 '다윗'을 그렸다. 화면 앞에 하이라이트로 훤하게 드러난 골리앗의 얼굴은 놀랍게도 피폐한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자기 고백으로 본다면, 참수된 골리앗으로 자신을 그린 카라바조가 이 그림에서 반영하려고 한 것은 자기혐오였을까?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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