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27] 도미에의 풍자화

yellowday 2013. 1. 5. 06:57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악덕을 신랄하고 재치 있게 그려 보여주는 풍자화의 전통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그 주된 대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 또는 정치인들이었다. 화산재 속에 파묻혔다가 발굴된 고대 폼페이 유적에서도 그 시대 정치인과 연관된 정치 풍자화가 발견되었고, 중세에도 인간의 탐욕과 욕망, 그리고 나태를 시각 매체를 통해 풍자하는 전통은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적 풍자 미술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신문과 잡지 등 인쇄 매체가 널리 보급되는 근대기에 들어서였다. 18세기 말의 대혁명 이후 크고 작은 혁명이 잇따르면서 정치적 진통을 겪고 있던 프랑스에서 최고의 풍자화가는 오노레 도미에(1808~1879)였다.

1830년 개혁을 원하던 진보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루이 필립이 왕위에 오르자 도미에는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의 12월 3일자에 '가르강튀아 같은 필립'이라는 제목의 정치 삽화를 실었다. 루이 필립은 16세기 소설의 주인공인, 식욕이 왕성했던 거인 왕 가르강튀아처럼 뚱뚱한 거인으로 그려졌다.

‘가르강튀아 같은 필립’
그는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돈과 경사로로 올라오는 뇌물을 마구 집어삼키고 있다. 그의 머리는 서양 배와 같이 생겼는데, 프랑스에서 돌대가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경사대 아래에는 떨어지는 돈을 주우려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배경에는 루이 필립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고 있다. 프랑스 당국은 왕을 모독하고 정부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 죄로 도미에에게 6개월 감옥 형을 선고하였다. '라 카리카튀르'지도 1835년에 폐간되고 말았다.

도미에는 그 후 일간지 '르 샤리바리'에 삽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검열이 심해지면서 정치 풍자보다는 파리의 소시민들 생활의 단편에 대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풍자화를 그렸고, 파리 시민들은 그의 풍자화를 보고 재미있어 했다. 생전에 미술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몇 개의 구불구불한 선만으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그의 석판화들은 오늘날 미술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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