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30 22:25
어떤 이가 시인을 만나면 뚜벅 물었다. 진보요 보수요? 대답은 엇갈렸다. 이성복은 "나? 진보적 보수지요" 했다. 유안진은 "(대통령으로) 아무나 좋아요.
그러나 이 사람은 안 돼요" 했다. 김춘수는 무릎에 덮인 담요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나는 정말 후회합니더. 국회의원 한 거 말이요.
" 1980년대 서슬 퍼렇던 시절 그를 찾아온 권력 실세가 반강제로 전국구 의원을 맡겼다고 했다. 시인은 명분이 허술했던 정권의 구색 갖추기에 들러리가 됐다.
▶시집 '겨울공화국'으로 이름난 양성우는 지역구 의원을 했다. 그는 '겨울'이라는 계절 언어와 '공화국'이라는 정치 언어를 합쳐 시어(詩語)를 지었다.
그가 국회의원 배지를 떼고 오랜만에 새 시집을 냈을 때 서울성공회 마당에서 만났다. 얼굴이 맑았다. 어울리지 않는 어깨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표정이
이런 것이다 싶었다. 그는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얘기도 많이 했다. 같은 사내지만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안도현은 참 다정한 시인이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오목가슴이 훈훈하게 덥혀 온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그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했을 때
겨울을 견디는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이 금세 뜨듯해졌다. 광화문 교보빌딩 벽에 시구를 크게 써 붙일 때마다 사람들이 미리 모여 의논한다.
그때마다 안도현의 시가 후보에 올랐다. 찬 바람 맞으며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선 시민 눈에 안도현의 시구는 연탄 난로보다 따뜻했다.
▶밤새 마른 창자에 짜르르 아침 술을 삼키는 노동자들도 그의 시를 뜨거운 국물 마시듯 읽었다. 그가 야권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정치판에서 시인은 대개 선거 현수막 같은 역할을 한다. 안도현은 손에 파스를 붙인 박근혜 후보에게 "연민을 자극하는 상처 마케팅"이라고 했다.
"그녀, 잘 가꾼 악(惡)의 얼굴이여"라고도 했다. 안도현은 자신의 글짓기 솜씨에 정치적 감각을 버무려서 한 방 날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도 시인이다. 굳이 따지면 안도현의 문단 선배다. 김 의원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에 실망했다고 하자 안도현은 선배를 나무라며
"뻘짓 그만 하시고 차라리 쥐구멍에 들어가라"고 했다. 다른 정치인에게는 "개콘보다 웃기는 찌질이"라고 했다. 순정(純正) 부품만 쓰던
언어 수리공 안도현이 '뻘짓'이나 '찌질이'처럼 사전에도 없는 말을 쓰고 있다. 어차피 선거가 끝나면 현수막도 떼내겠지만 정치가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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