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46] 歲畵 虎鵲圖

yellowday 2011. 4. 3. 18:53

설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설날 옛 풍속 중에는 세배(歲拜), 세찬(歲饌), 세비음(歲庇蔭:설빔)과 함께 세화(歲畵)라는 것이 있었다. 설날 새벽에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대문에 액막이로 붙이는 벽사도(�J邪圖)를 말한다.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를 보면 설날의 방매귀(放枚鬼) 행사를 설명하면서 "이른 새벽 대문간에 처용(處容), 종규(鐘�s), 닭, 호랑이 등을 붙인다"고 했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19세기에 풍속을 기록한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에서는 "도화서(圖畵署)에서 세화를 그려 올린다. 금(金)장군, 갑(甲)장군을 그린 것은 궁궐의 대문에 붙이고 신선 그림이나 닭 그림, 범 그림을 벽에다 마주 붙인다. 때론 왕의 친척이나 가까운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도화서 화원(畵員)들은 세밑이면 이 세화를 그리느라고 매우 바빴다. 1867년에 반포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는 화원의 임무 중 세화에 관한 사항이 별도로 나와 있다. "차비대령(差備待令: 비상대기) 화원(26명)은 각 30장(張), 도화서 화원(30명)은 각 20장을 섣달 스무날까지 그려 바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궁중의 풍속은 자연히 민간에게도 전파되었다. 궁중의 세화는 권위적인 내용을 정통화가가 정통화법으로 그린 것이었지만 민간 세화는 모든 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중 인기 있는 그림이 '호랑이와 까치 그림(虎鵲圖)'이었다. 여기서 호랑이는 온갖 잡귀를 막아주는 벽사(�J邪)의 의미를 갖고,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보희(報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민화의 화가들은 이 호랑이를 아주 재미있게 변형시켜 까치가 호랑이를 골려주고 있는 유머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 그래서 호랑이는 권세를 가진 양반과 관리, 까치는 서민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궁궐 대문부터 관아, 양반 저택, 민간에 이르기까지 세화를 붙이는 것은 설날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드는 데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시각 매체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집집마다 색채 화려한 그림들을 붙여 놓았으니 마치 거리의 전시장 같지 않았겠는가. 경인년 설을 맞이하자니 서민의 세화였던 '호랑이와 까치' 그림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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