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詩 사랑詩

[41] 농 담 - 이 문 재

yellowday 2012. 11. 23. 07:31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틈틈이 들르는 산골에 갔다. 첫 서리가 이미 지나간 산촌의 스산한 아름다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지경이다. 바위에 고스란히 떨어져 쌓여 있는 물든 나뭇잎들과 고여 있는 수정 같은 물, 구름…. 간혹 안개 낀 날은 멀리서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어디로 가는가. 보이지 않는 소리마저도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혼자 있기 아깝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느낌, 이 차원, 이 율동, 이 균질감….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언젠가 맛난 것을 먹으면서 한 열 사람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제 삶을 한 번 의심해 봐야 한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나는 그때 열 사람의 얼굴은커녕 다섯 사람도, 아니 어쩌면 한 사람도 제대로 떠올려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이 시에 의하면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거나 '외로운 사람'이었다(이 시를 처음 읽으며 '그러한 사람, 나쁜 사람이다' 라고 썼을까 봐 조마조마했음을!)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감히 이 시에 이러한 말을 보태고 싶어진다.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가난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가난했던 사람이거나 여전히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다"라고.

이문재 시인(49)은 대학 시절 청량리의 어느 이발소 다락방에서 자취를 했었다. 친한 후배와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그에게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정색하고 화를 냈었다던 시인이다. 요즘은 자주 들르는 선술집에 갔다가 옆 테이블에 아는 얼굴만 있으면 도맡아 막무가내로 계산을 한다.

그의 사랑은 가난에서 자란 사랑이고 잃어버린 가난에 대한 사랑이고 너무 빛나고 빠른 것에 밀려난, 느리고 그늘진 것에 대한 사랑이다. 그가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우리 살던 옛집 지붕〉)고 노래할 때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가난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다시는 그 집을 찾을 수 없다.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