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2002년>
섬진강 시인, 섬진강이 제 노래를 하기 위해 낳은 시인, 그래서 섬진강을전담해서 다 노래하는 시인, 초등학교 2학년이 좋아 오랜 세월 2학년 담임을 전담했다던 선생님 시인, '집을 향하기 전에 2학년 1반 교실 유리창을 다 닫고 그 너머로 강변 마른 풀밭 풀잎 위에 남은 햇살들을 보'(〈나는 집으로 간다〉)는, 주로 1반만 있는 시골학교의 평생 평교사 시인,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나가 김용택인디!" 하는 타고난 붙임성의 시인, 까마득한 후배를 만나도 늘 다른 무엇도 아닌 "큰 성(형님)"이 되어 주는 시인, 약간 높은 톤으로 말하며 하하하! 웃는 시인, 콩 타작 마당에서 쥐구멍에 들어간 콩을 보며 〈콩, 너는 죽었다〉고 동시도 쓰는 시인, 연애시도 잘 쓰지만 막상 연애박사일 성싶지는 않은 순정파 시인, 지난 여름 아쉽게 퇴임한 할아버지 시인, 이해인·김훈·도종환·안도현·성석제·정호승·장사익 등 당대의 쟁쟁한 문인과 예인들로부터 퇴임을 위로하는 글 잔칫상 《어른 아이 김용택》(문학동네)을 받은 복 많은 시인, 김용택 시인(60)!
시를 보니 그는 '월인천강(月印千江)'한 저녁, 그만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어 연인에게 전화를 해댔구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당가를 서성이다가, 최대한 낮게 숨을 고르고 나서 '달이 떴다고, 섬진강 변이 너무나 환하고 곱다'고.하고 싶은 말은 그러나 더 있었을 터. 그 말은 차마 못하고 더듬거리며 '달 이야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심전심(以心傳心), 척 알아듣고 이렇게 답을 보냈다.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이는 시인이 아니라 그 연인이어야 하는데 작가는 김용택 시인이라니 혹시 '슬쩍' 한 것인가? 그럴리야. 그러한 애틋하고도 향기로운 답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과 그리움이 이 시가 된 것이리라. 그래서 스스로 전화하여 마음으로 말 걸고 스스로 답을 만들어 받은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는 행복의 순간 같지만 그 이면엔 쓸쓸함이 아침 안개처럼 흐르기도 한다. 물론 사실 그대로일 수도 있겠으나 더 아름다운 달이 뜨는 강변을 가진 연인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김용택 시인은 농경 공동체를 온전하게 체험한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그의 몸과 기억에는 근대 이전의 우리 공동체가 경험한 감각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의 시는 그래서 '온전한' 고향의 노래이고 그가 노래한 사랑 또한 '오리지널'한 고향의 사랑 노래다. '내가 그냥 좋아했던 이웃 마을 그 여자/ 가을 해가 뉘엿뉘엿 지는 날/ 이 길 걸으면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살아나와/ 저만큼 앞서가다가 뒤돌아다보며/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사귀같이 살짝 낯을 붉히며 웃는,/ 웃을 때는 쪽니가 이쁘던 그 여자/ 우리나라 가을 하늘같이 오래 된 그 여자"(〈애인〉)에 나타나듯 그가 사랑한 '우리나라 가을 하늘같이 오래 된 그 여자'는 실은 우리들 모두의 저, 낮은 자리 마음이 늘 사랑한, 사랑할 그 여자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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