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정신의학·행동의학과 피터 V. 라빈스 교수는 '36시간:길고도 아픈 치매가족의 하루'라는 책에서 "치매 환자가 비정상적인 정신·행동 증상을 보이면 보호자가 주변 환경을 바꾸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가족의 적극적인 대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도 증상이 계속되면 약물 치료를 고려하지만, 항정신병 약물을 오래 복용하면 인지 기능이 더 떨어지거나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
- ▲ 치매에 걸리면 기억력 장애를 포함한 우울감·망상·배회·집착 등의 여러 가지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우울감=치매 환자의 80%가 우울증을 겪지만,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가족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식욕이 떨어지거나 무기력한 증상을 보이면 우울증을 의심하고, 평소 좋아했던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손주와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즐거웠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환자의 방 벽지를 파스텔 톤의 색깔로 바꾸거나, 좋아하던 꽃으로 주변을 장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망상=치매 환자의 23~50%가 망상을 겪으며, 이 중 대부분은 누군가가 자신의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하는 '도둑 망상'이다. 딸이나 아들 등 한 사람을 골라 추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물건을 둔 장소를 잊어버리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이때는 "함께 찾아보자"며 안심을 시키고 물건을 찾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 순간 환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평소 아끼는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박스 등을 따로 마련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환각=치매 환자의 15~49%가 환각을 경험한다. 세상을 뜬 배우자를 보거나 현실에 없는 존재를 보는 환시(幻視)가 대부분이다. 환각을 겪을 때 그 사실을 부인하면 혼란을 느낄 수 있으므로, "아, 그렇군요"라는 식으로 가볍게 받아들여야 한다.
▷불면증=치매 환자는 처음 잠드는 것도 어려워하지만, 자다가 새벽에 깬 뒤 다시 잠들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을 때, 주변이 어두워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는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공포감·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처음 잠들 때까지는 옆에 있어 주고, 잠든 뒤에는 방과 거실에 조명등을 켜두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행동 증상과 대처법
▷질문 반복=치매에 걸리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 끈기 있게 환자를 집중시키고 눈높이에 맞춰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환자가 펜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으면 "볼펜이다"라고 하는 대신 직접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글씨를 쓰는 물건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면 환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 사람에게 집착=치매에 걸리면 지남력(시간과 장소를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착 대상이 잠시만 안 보여도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 불안해 한다. 환자를 남겨두고 화장실을 가거나 잠시 외출할 때는 시계를 이용해 돌아올 시각을 가리키며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성적 행위=치매 환자의 20~70%가 성적 행위를 하는데, 이를 보고 과민 반응하면 환자가 위축감을 느낀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나는 며느리이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지능력이 떨어져있기 때문에 성적 행위를 시도하는 대상을 젊은 시절의 배우자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지를 벗거나 성기를 만지는 행동이 모두 성적 행위인 것만은 아니다. 소변이 마렵거나, 기저귀가 불편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자신의 물건으로 오해=남의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고 고집을 부릴 때 물건을 강제로 빼앗으면 오히려 적대감을 느껴서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설명해도 환자는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 물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도움말=우종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아랑 강동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