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서울 루미나리에

yellowday 2012. 10. 12. 23:04

입력 : 2004.12.14 18:46 / 수정 : 2004.12.14 18:46

만평 기사 이미지 

 

1995년 말 일본의 고베(神戶)는 탈진 상태였다. 사망 5500명, 부상 4만여명, 이재민 30여만명. 그해 1월 있었던 지진 피해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내일을 기약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둔 12월 15일 고베 중심가에 길이 700m의 회랑(回廊)이 생겨났다.

서양의 바로크 시대 건축을 연상시키는 목제 아치형 장식물들을 세우고 15만개의 꼬마 전구를 설치해 일몰 후 빛을 밝히자 거대한 ‘빛의 터널’이 됐다.

 

▶‘꿈과 빛’이라 이름 붙은 이 행사는 폐허같이 우중충하던 고베의 연말 분위기를 한순간 바꿔 놓았다.

다양한 디자인의 목조 구조물이 연출하는 환상적 조명들을 보며 사람들은 지진 피해의 시름을 잊고 도시 재건의 꿈과 용기를 키웠다.

크리스마스까지 11일 동안 찾은 사람이 254만3000여명. 원래는 일회성 행사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요구로 이 행사는 고베의 희망을 상징하는 겨울 축제(‘고베 루미나리에’)로 자리잡아 매년 500여만명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빛의 축제’라고 번역되는 루미나리에(Luminarie)는 빛·조명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에서 왔다.

16세기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빛을 이용해 거리와 광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종교의식에서 비롯됐다.

처음엔 전나무 조각에 기름 등잔이나 가스등을 달았으나 19세기 말 전기가 발명되고 단순한 목조각이 입체 건축물로 바뀌면서

도시의 밤을 수놓는 3차원의 환상적 조명예술로 발전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나 피렌체, 독일의 도르트문트, 스페인의 마드리드,

 미국의 휴스턴이 루미나리에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도시들이다.

 

▶“빛이여, 이 내 빛, 세상을 채우는 빛, 눈에 입 맞추는 빛/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빛이여/

아! 이 내 목숨 한가운데 빛을 울리는 사랑하는 사람이여”(타고르)

 빛은 어둠과 공포에 대립되는 꿈과 희망의 상징이다. 그래서 특히 한 해 있었던 어려움을 털어 버리고 새해를 설계할 때 떠올리고 싶은 말이다.

 

▶‘2004 우리 이웃·서울 루미나리에’가 오늘(15일) 개막, 내년 1월 3일까지 20일간의 축제에 들어간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해가 진 광화문 덕수궁 일대에선 20여만개의 구슬전구가 빛의 궁전을 연출할 것이다.

빛으로 위로받아야 할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와 어려움이 많았던 한 해였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넉넉함을 나눌 수 있는 축제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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