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16 22:32
- 김후신 '대쾌도' - 종이에 담채, 33.7×28.2㎝,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개울이 졸졸 흐른다. 그런데 느닷없이 왁자한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이 무슨 난장판인가. 고주망태가 된 술꾼들이 서로 뒤엉켜 엎어지고 자빠지고
수선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말이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차림새는 버젓한 반촌(班村) 사람들인데 행실은 도무지 꼴불견이다.
뭣들 하는 꼬락서니인지 하나하나 뜯어보자.
가장 골칫덩이는 가운데 사람이다. 망건 위로 상투가 아예 수세미가 된 작자다.
그는 벌써 정신 줄을 놓았다. 갓은 어디서 벗겨졌는지 없고, 대자(大字)로 쓰러지며
고래 고함을 지른다. 술 취한 패거리가 해대는 수작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때문에 낭패를 보는 쪽은 덜 취한 이들이다. 앞사람이 손목을 잡아끌지만
해롱대는 놈은 누구도 못 당한다. 곁에서 겨드랑이를 부축해도 악다구니 쓰며
버티면 도리가 없다. 뒷사람은 온 힘을 다해 등을 받쳐주다가 제풀에 고꾸라질 판이다.
가을의 적막을 깨는 취객(醉客)의 소란에 나무들이 다 놀랐다.
줄기에 크게 파인 자국이 마치 휘둥그런 눈처럼, 딱 벌어진 입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조선 영·정조 때의 화가 김후신(金厚臣)이다.
그는 술 마신 뒤끝이 볼썽사나운 양반들을 풍자했다. 제목은 '대쾌도(大快圖)'라고 했지만
남이 보면 불쾌(不快)한 장면이다. 김후신이 활동했던 영조 시절은 금주령이 엄혹했다.
벼슬아치가 술 취했다는 이유 하나로 임금이 그의 목을 베어버리기도 했다.
몰래 술 마시다 들켜서 귀양살이 떠난 이도 속출했다. 요즘 주폭(酒暴)이 들으면
오금이 저리겠다.
상쾌한 주도(酒道)는 정녕 찾기 어려운 것인가. 중국 송나라의 학자
소옹(邵雍)이 읊은 시에 귀를 기울여 보자.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美酒飮敎微醉後)/
예쁜 꽃 보노라, 반쯤만 피었을 때(好花看到半開時).
'이 좋은 양생법(養生法)을, 술꾼들이여, 어찌 그리 모르시는가. .....y
'옛그림 옛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 남편들이여, 이젠 저렇게 밥상을 차려라 (옛사람 옛그림) (0) | 2012.10.09 |
---|---|
[26] 꽃가지 꺾어 든 그녀, 쪽빛 치마 살포시 들어올렸네 (0) | 2012.09.25 |
[24] 이 그림이 스님 초상화라고?… 꼭 얼굴을 보아야만 보았다고 하겠는가 (0) | 2012.09.21 |
[23] 사람 일은 얼굴에 새겨지고, 세상엔 거저먹는 일 없다 (0) | 2012.09.20 |
[22] '18년 영의정' 비결은… 희로애락 감춘 낯빛에 담겼소 (0) | 2012.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