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01 23:03
- '김시습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71.8×48.1㎝, 조선 중기, 부여 무량사 소장.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읽던 책을 불사르고 출가했다. 그는 중이 되고자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수염은 남겨두었다. 누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는 대꾸하기를, "머리를 깎아 속세를 피하고, 수염을 남겨 장부(丈夫)임을 알린다"고 했다.
그의 생애는 그 말 그대로다. 머리는 중이요, 수염은 장부여서 승(僧)과 속(俗)을 오갔다. 그가 겪은 풍상이 오랜 초상화에 남았다. 조선 중기에 그려진 초상이라 세월을 지나며 비단 바닥에 금이 가고 군데군데 긁히고 깎였다. 김시습은 생전에 두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숨을 거둔 부여 무량사에서 내려온 이 초상은 그것과는 다른 이름 모를 화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김시습의 얼굴은 은은한 살굿빛이다. 필획과 채색이 희미해졌지만, 잘 들여다보면 눈썹 사이에 잔뜩 찌푸린 주름이 보인다. '내 천(川)' 자가 새겨진 골이 자못 깊다.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했을까. 그의 별명이 '김오세(金五歲)'였다. 다섯 살짜리 신동이란 얘기다. 그의 재주는 한 시절 임금을 기쁘게 했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에 이내 염증을 낸 그는 구름처럼 떠돌았다. 찡그린 미간과 희번덕하는 눈매를 보라. 시속(時俗)에 무젖지 않으려는 고집이 안색에 고스란하다.
'옛그림 옛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 스물세 살, 살림도 내조도 겪을 만큼 겪었소 (0) | 2012.09.15 |
---|---|
[18] 옳은 일에 목숨을 걸었던 '통치자의 일가친척' (0) | 2012.09.15 |
[16] 무명 선비의 항변 "이 초상화는 나를 잘못 그렸다" (0) | 2012.09.15 |
[15] 꿈틀대는 용 무늬에 '大權의 기상'이 (0) | 2012.09.14 |
[14] 忠臣의 붉은 마음, 주름살과 사마귀에도 깃들었네 (0) | 2012.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