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17 23:07
조선 왕조에서 얼굴이 알려진 임금이 몇 명이나 될까. 남아있는 초상화와 사진 다 동원해도 열 명이 안 된다. 그 숱한 왕의 초상이 전란을 겪으며 대부분 불에 타버렸다. 조선은 '초상화의 천국'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닌 것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는 한 시절 초상화가 26점이나 됐다. 곤룡포 차림은 물론이요,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도 있었다. 또 말을 탄 장면까지 그려졌다고 하니 임금의 초상, 곧 어진(御眞)의 흥미로운 형식이 짐작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조의 초상은 이 한 점만 남았다.
이 어진은 1872년 다시 그린 이모본(移模本)이다. 전주 경기전에 있던 모본을 보고 베꼈지만, 쏟은 공은 대단했다. 모본은 이모본을 만든 뒤 불태웠다. 이모본에는 화가가 무려 8명 참여했다. 조중묵, 백은배, 박기준, 유숙 등 그림 실력으로 따져 당대에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숙수(熟手)들이 한 달이나 매달렸다. 다시 태어난 개국의 시조는 어떤 모습인가. 위로 뿔이 달린 익선관에 짙푸른 곤룡포, 정면을 응시하며 버티고 앉은 틀거지가 혁명의 군주에 손색없다. 당대나 후대나 태조의 기골에 대한 기록은 비슷하다. 헌칠한 몸에 귀가 크고 콧날이 우뚝해 풍채가 호걸다웠다는 것이다.
이 어진은 1872년 다시 그린 이모본(移模本)이다. 전주 경기전에 있던 모본을 보고 베꼈지만, 쏟은 공은 대단했다. 모본은 이모본을 만든 뒤 불태웠다. 이모본에는 화가가 무려 8명 참여했다. 조중묵, 백은배, 박기준, 유숙 등 그림 실력으로 따져 당대에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숙수(熟手)들이 한 달이나 매달렸다. 다시 태어난 개국의 시조는 어떤 모습인가. 위로 뿔이 달린 익선관에 짙푸른 곤룡포, 정면을 응시하며 버티고 앉은 틀거지가 혁명의 군주에 손색없다. 당대나 후대나 태조의 기골에 대한 기록은 비슷하다. 헌칠한 몸에 귀가 크고 콧날이 우뚝해 풍채가 호걸다웠다는 것이다.
- '태조 어진' - 조중묵·백은배 등 합작, 비단에 채색, 218×156㎝, 1872년, 어진박물관 소장.
국초(國初)를 연 태조의 용심(龍心)이 드러나는 어진이다.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요즘 잠룡(潛龍)들의 디자인이 덩달아 궁금해진다.
'옛그림 옛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이미 俗世 등져 머리 깎았거늘… 왜 시름 담아 두 눈 부릅떴나 (0) | 2012.09.15 |
---|---|
[16] 무명 선비의 항변 "이 초상화는 나를 잘못 그렸다" (0) | 2012.09.15 |
[14] 忠臣의 붉은 마음, 주름살과 사마귀에도 깃들었네 (0) | 2012.09.14 |
[13] 요절한 아저씨, 기억으로 되살려… 유족 울음바다 (0) | 2012.09.14 |
[12] 얼마나 염불했길래 염주 알이 저리 투명할꼬 (0) | 2012.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