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16 23:15
경북 김천서 나고 자란 소설가 김연수는 스물댓 살에 홍어를 처음 봤다. 서울 인사동 막걸릿집에서 선배 시인이 권하는 대로 분홍빛 생선살 한 점을 무심코 집어먹었다. 순간 그는 '전교생이 쓰는 변소를 통째로 삼킨 듯한 느낌'에 압도됐다. 암모니아 냄새가 입안에서 사흘을 가시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왜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살다 보니 그것은 '죽을 줄 알면서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욕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홍어를 '어른들의 음식'이라고 불렀다.
▶홍어 삭히는 과정을 보면 김연수가 변소를 떠올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항아리에 돌멩이를 놓은 위로 짚 깔고 홍어 얹기를 거듭해 켜켜이 쌓는다. 주둥이를 꽉 막아 어둑한 광에 넣어둔다. 숫제 썩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엿새 지나 항아리를 열면 숨이 턱 막히도록 암모니아 냄새가 꽉 차 있다. 옛날엔 추워서 홍어가 잘 삭지 않는 겨울이면 퇴비 썩히는 두엄자리에 홍어를 던져두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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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홍어가 썩지 않고 삭는 것은 몸에 요소(尿素)가 유난히 많은 덕분이다. 홍어를 삭히면 요소가 분해되면서 암모니아가 나온다. 단백질이 부패해 암모니아를 내뿜는 것과는 다르다. 암모니아는 냄새 고약한 독성물질이지만 홍어에서 나는 건 몸에 해로운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홍어를 강알칼리성으로 만들어 부패 세균과 식중독 세균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김치나 치즈 같은 발효식품이 그렇듯 홍어에 맛 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 입 천장과 혓바닥이 벗겨지도록 지릿 알싸한 맛에 빠져든다.
▶홍어는 가오릿과(科) 생선이다. 가오리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두드러진 차이는 홍어 '코'가 뾰족하게 튀어나왔다는 것쯤이다. 그렇게 닮았어도 가오리는 삭혀봐야 홍어처럼 톡 쏘지 않는다. 삭힌 홍어 살은 쫀득쫀득 차지지만 가오리는 흐물흐물하다. 요소가 홍어만큼 많지 않아서다. 얼마 전부터 독도 해역에서 잡히는 참가오리의 DNA를 수산과학원이 분석했더니 가오리가 아니라 홍어로 밝혀졌다는 소식이다. DNA가 서해 홍어와 완전히 일치했다고 한다.
▶온난화 탓에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지고 조기와 병어가 잡힌다. 남해 멸치가 충청 서해안까지 올라가 서해 멸치가 30%를 차지한다. 이런 뒤죽박죽 세상에 홍어라고 흑산 바다에만 고이 머물라는 법이 없다. 덕분에 독도 인근 어민들은 신이 났다. 가오리인 줄 알고 1㎏ 2만5000원에 내다 팔던 홍어를 이제 10만원 넘게 받게 됐다. 홍어는 그 먼 독도까지 왜 갔을까. 가뜩이나 중국 배 저인망에 시달려 뿔이 났다가 독도에 찝쩍대는 일본에 부아가 터져 톡 쏴주러 달려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