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곡선 부패'

yellowday 2012. 8. 10. 09:28

입력 : 2012.08.09 22:43

효종 때 강직한 문신 김상헌에게 어느 정승이 찾아와 상의했다. "안사람이 번번이 뇌물을 받는다는 비방이 들려오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김상헌은 "부인의 청탁을 하나도 들어주지 마시라"고 했다. 정승이 그대로 했더니 잡음이 깨끗이 사라졌다. 정승의 아내는 베갯머리송사가 먹히지 않자 김상헌을 원망했다. "노인네 혼자 청백리 노릇 하면 그만이지 남편까지 본받게 해 이 고생을 시키는가."

▶정약용은 목민심서 '제가(齊家)' 편에서 가정 다스리기를 말했다. '청탁과 뇌물이 오고가지 않아야 올바른 집안이라 할 수 있다.' 세종 때 명재상 황희의 맏아들은 참의 벼슬에 오르자 새집을 크게 짓고 친구와 관리들을 불러 잔치를 열곤 했다. 황희는 아들 집에 갔다가 상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선비가 비 새는 집에서 나랏일을 돌봐도 잘될지 모를 일이다. 사는 곳이 이리 호사스러워서야 뇌물이 오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조선 중기 청백리 윤석보는 풍기 군수가 되자 가족을 두고 혼자 갔다. 고향에 남은 아내는 가난에 쪼들리다 시집올 때 입었던 비단옷을 팔아 작은 밭뙈기를 장만했다. 윤석보가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나무랐다. "관직에 나아가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전에 없던 밭을 마련했다 하면 세상 사람이 나를 어찌 보겠소. 임금의 덕(德)을 더럽히는 일이오." 아내 박씨는 밭을 물렸고 윤석보는 조정에 사직서를 냈다.

▶"베갯밑공사는 옥합도 뚫는다"고 했다. 잠자리에서 아내가 소곤대는 말엔 단단한 옥그릇도 못 견딘다는 얘기다. "자식 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있다. 뇌물 먹이는 사람들에겐 금언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요즘 중국에선 고위 공무원이 아내와 아들을 앞세워 뇌물을 챙겼다가 부부·부자가 법정에 서는 일이 잇따른다. 어제 재판이 시작된 전 충칭 당서기 아내 구카이라이는 해외로 빼돌린 재산만 60억달러가 넘는다. 중국에선 직접 뇌물을 받는 것은 '직선 부패', 가족이 챙기는 것은 '곡선 부패'라고 부른다.

▶우리 지자체에서도 '곡선 부패'가 불거지고 있다. 경찰은 그제 수도권 어느 시장의 아내와 아들이 건설업자로부터 억대 돈을 받은 혐의를 잡았다고 밝혔다. 2년 전엔 역시 수도권 시장의 조카 부부가 승진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다가 쇠고랑을 찼다. 후한(後漢) 양진은 동래 태수로 부임하다 누군가 은밀히 금덩어리를 바치자 "하늘과 땅, 너와 내가 안다"며 물리쳤다. '양진사지(四知)'라는 고사다. 이제는 뇌물을 부부와 아들딸이 받아먹는 '사수(四受)'의 시대인가. 부패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파렴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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