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손목터널증후군

yellowday 2012. 6. 9. 07:00

입력 : 2012.06.07 22:50 | 수정 : 2012.06.08 03:29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나온다. 아내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줍는다. 농사를 짓고 집안일도 도맡아 하던 우리네 옛 농촌 여인이다. 요즘 젊은 여성 문인들은 '사철 발 벗은 안해'라는 이미지를 비판한다. 맨발로 농사짓는 아내를 고향과 모성(母性)의 상징으로 삼았던 남성 중심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도시로 나가 '모던 보이'로 살면서, 여자들은 시골집에서 무지렁이로 살림만 했던 옛날 악습(惡習)을 미화했다는 지적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여성 지위가 많이 높아졌다지만 그래도 집안 살림은 대개 여자들 몫이다. 우리 가정에서 전업주부는 하루 평균 4시간 11분 동안 가사노동에 시달린다. 남편은 하루 평균 19분씩 거든다고 한다. 맞벌이 집에서도 아내가 2시간 38분 집안일을 하는 데 비해 남편은 24분에 그친다.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짧다고 한다.

▶작가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6년 동안 쓰면서 200자 원고지 1만5000여장을 손 글씨로 메웠다. 손목 통증이 심해지자 만년필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결국 가벼운 세라믹 펜으로 바꾼 지 오래됐다. 전업 소설가만 손목을 무리하게 쓰는 게 아니다. 손목 노동으로만 따지자면 가정주부를 앞지를 직업이 없다. 젖은 손으로 설거지와 걸레질, 빨래를 되풀이하느라 손목이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요즘 손끝이 저릿저릿 저린 손목터널증후군을 앓는 주부가 많다. 오랫동안 손목을 혹사하면 신경과 인대가 지나가는 손목 속 통로가 터널처럼 좁아진다. 결국 신경이 눌려 손이 저리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를 조사했더니 5년 사이 5만명이나 늘어났다고 한다. 2007년 9만5000여명이던 환자가 지난해 14만3000명으로 크게 뛰었다. 환자의 80%가 여자였다. 여성 환자 중엔 40대가 22%, 50대 40%, 60대가 17.2%를 차지해 중년 여성일수록 손목 통증을 많이 앓는다.

▶가사노동자의 99.8%가 여성이고 평균 연령은 53.5세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평균 68만3000원으로 저평가될 만큼 제 대접을 못 받다 보니 그 고통도 무시당한다. 천 년 전 영국에선 아내를 '피스 위버(Peace-weaver)'라고 불렀다. 한 올 한 올 천을 짜듯 '평화를 짜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집안일을 도맡는 아내 덕분에 가정이 평화로운 대가로 아내의 손목이 망가지고 있다. 아내 손목의 소리없는 비명에 남편들이 귀 기울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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