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黃眞伊와 소세양 蘇世讓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하면 황진이와 박연폭포 그리고 서경덕을 꼽는다.
황진이는 1535년 중종 30년 기생이 된지 만 5년인 23세에
나라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실상부한 명기의 반영에 올랐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여류 시인으로서,
그리고 고려의 맥을 잇는 거문고 명인으로서 특히 인정받았다.
서경덕은 황진이가 스승으로 우러러 존경하였던 분이고,
황진이가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 중에 판서를 지낸 소세양이라는 분이 있었다.
소세양蘇世讓이 젊었을 때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 나는 색色에 혹하는 자는 사내라고 생각하질 않아.
나는 어떤 미인을 만나더라도 혹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그러자 친구는 말했다.
- 아직 장담하기는 이르지. 송도에 황진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기녀妓女가 있다는데,
자네가 혹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마침내 이들은 내기를 하였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소세양은 자신이 그녀와 함께 꼭 30일만 함께 보내고 헤어지겠다고 말했다.
만약 하루라도 더 머문다면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소세양이 송도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
개성의 유수가 소세양을 모시고 황진이 집으로 갔다.
황진이는 친히 나와 소세양을 맞이 하였다.
소세양이 보니 과연 듣던 대로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다.
그리고 방에 걸려 있던 족자簇子하나를 주시했다.
당대 제일의 시인이요, 문장가이며 문필가였던 소세양이 감탄할 명시名詩요 명필名筆인 황진이 자신의 한시와 글씨였다.
유수 : 예조판서를 거쳐 한성부 판윤에 오르신 양곡 소세양 어른 이시네.
진 : 지난해에 진하사로 명나라에 가 중국가지 문명을 떨치고 왔다 들었습니다.
송설체에 빼어나다는 명성도 익히 들었습니다.
유수 : 오호., 과연 진은 시와 서를 두루 섭렵한 모양이구먼....
이번 여행은 화담 선생을 방문하는 것이 표면적인 목적이지만, 실은 자네를 만나러 오는 것이네.
이번에도 일정은 꼭 한 달이라네. 그 전에 돌아갈 수는 있어도 넘칠리는 없다고 장담했다는군.
만약 넘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했다네.
내기가 걸렸다더군. 나는 명월이에게 걸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 : 비장의 무기라도 있느냐?
진 : 사무치도록 마음을 드리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진 : 먼 길 떠나 미천한 저의 집에 들러주시니, 황송합니다.
소세양 : 과연 아름답구나.
진 : 감사하옵니다.
소 : 선물이다. 제주 한란이다. 귀한 것을 내가 키우다 보니, 조금 나눌 수 있기에 네게 준다.
족자는 <살아 생전 한 번은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금강산이다.
그곳의 비경 중에 비경인 은선대와 12폭포를 그린 것이니라.
내 가진 것 중에 아름다운 것을 네게 주고 싶어 이것을 골랐다.
진 : 이토록 소중한 난과 그림을 나누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소 : 한 달간이나 마음을 달라고 청을 하는 사람이 어찌 귀한 것을 아끼겠느냐.
진 : 금강산은 어떠한 곳입니까?
소 : 중국인과 일본인들도 죽기 전에 한 번 가보기를 소원하는 신성한 산이지.
금강이란 말은 화엄경에 나오는 진실의 힘과 같은 깨지지 않는 견고함이란 뜻이다.
끝없는 대륙을 지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의 진산이 금강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
아름다움의 극단은 신성한 법이니, 금강산의 신묘함은 세속의 말로 형용하기는 어렵다.
또한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사나운 맹수와 같은 변화무쌍한 기후와
선녀처럼 두드럽게 산을 감고 흐르는 계곡과 맑은 강물과 바다로 비롯된 것이니,
위인의 아름다움도 그와 같이 저 홀로 완전할 수는 없는 법이라 생각되었다.
소 : 저것도 열어보거라.
통영 자개로 만든 삼단 선반이었다.
검은 바탕에 오색 빛이 나는 모란과 나비를 자개로 수놓아 신비하고 찬란했다.
진 :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소 : 그리 반기니 거추장스럽게 실어온 보람이 있구나.
소세양은 진에게 거문고를청했다.
진은 오랜만에 <영산회상>을 탔다.
소 : 참으로 간사한 기교가 없이도 소리가 무궁함에 이른 연주구나....
대체 가볍고 민첩한 말로 어찌 표현하겠느냐?
공자는 악학을 으뜸 학문으로 쳤으니 네가 이룬 학문을 알겠구나.
진사의 서녀로 태어나, 양반가의 후실 자리를 마다하고 스스로 기생의 길을 택했다고 들었다.
그 속이 어떨 것이냐?
진 : 송구스럽습니다.
한 번뿐인 생인데 어찌 애매한 남의 자리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겠습니까?
평생 남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할까, 아니면 비를 맞으며 이 세상을 가로질러 가볼까 고민하였습니다.
저는 혈연과 끊어져 천지에 하나가 되었으며, 여자라 해도 스스로 삶을 경영합니다.
시와 거문고와 가인과 노래와 자연이 일치되어 사니, 그만하면 무슨 대가라도 치를 만하다 여깁니다.
소 : 내 너를 보지도 않고 좋아했으나, 너를 직접 만나니 전설을 대하듯 신비하구나.
중국의 주돈이라는 자가 연꽃을 노래했는데 너는 마치 그와 같다.
< 진흙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으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얼굴을 씻지만 교태를 부리지 않는다.
그 안은 영롱하게 뚫려 있고 밖은 꼿꼿이 서 있는 데다
함부로 넝쿨을 엮거나 헤프게 가지를 뻗지 않는다.
그리고 향기는 멀리까지 풍기며 멀수록 더욱 향기가 맑다.
혼자 우뚝 서서 조초롭게 뿌리를 내려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지언정, 가까이서 만지거나 희롱할 수 없다.
그러니 너는 참으로 군자의 꽃이로다. >
진 : 오래 기억하여 연蓮으로부터 배우겠습니다.
소 : 네게서 연향이 나는구나. 너같이 귀한 사람을 내 어찌 첫 만남에 갖겠느냐.
오늘은 그냥 잘 터이나, 내 곁에서 잠들어 다오.
진 : 그리하겠습니다.
* 겸재 정선의 그림 : 박연폭포
(인터넷에서..)
* 황진이의 시 : 朴淵瀑布 박연폭포
一派長天噴壑壟 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龍湫百仞水叢叢 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나는 듯 거꾸로 솟아은하수같고
怒瀑橫垂宛白虹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 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 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聳玉碎徹晴空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 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 박연폭포 바위에는 황진이가 머리카락으로 썼다는
[박연폭포]라는 시의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 시를 짓기로 했다.
소세양이 먼저
忽報平安字 문득 편지를 보내고 나니
聊寬夢相懸 꿈에서도 그리던 마음 풀어지네. @ 聊 : 애오라지 료
孤雲飛嶺嶠 외로운 구름 고개 너머로 흘러가고
片月照湖天 조각달은 이 호수를 비치고 있네.
兩地無千里 떨어진 서로의 거리 천리도 못되는데
相望近六年 못 만난지 여섯 해를 지냈네.
茅詹雨聲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듣고 @ 詹 : 이를 첨
長憶對床眠 그대 생각하다 책상머리에서 조네.
시를 듣고 난 황진이가 심금을 울린다고 하면서 답했다.
誰斷崑山玉 뉘라서 곤륜산의 옥을 끊어서 @ 誰 : 누구 수
裁成織女梳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가. @ 梳 :얼레빗 소
牽牛一去後 칠석날 떠난 임이 야속하여서
愁擲碧空處 시름처럼 푸른 하늘에 떠 있어라.
- 시가 슬프게 들리는 구나.
- 부끄럽사옵니다.
둘이서 술이 오고 간 후 황진이가 소세양의 청으로 가야금 반주에 노래를 불렀다.
둘이 이렇게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밤을 지샜다.
어느덧 두 사람이 만난 지도 꼭 한 달이 되었다.
소세양은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고자 황진이를 찾았다.
황진이도 내일 한양으로 떠나는 소세양을 아쉬워하며 하룻밤만 더 노시다 가라며 옷자락을 잡는다.
주저하는 소세양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듯이 말한다.
- 나으리, 섭하옵니다.
나으리와 소녀의 사랑이 겨우 이 정도였단 말입니까?
앞으로 두 번 다시 나으리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 자네가 미워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잠시 기다리면 내 다시 들림세.
황진이는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이라고 시를 한 수 지어 올린다.
奉別蘇判書世讓 소세양판서를 보내며
月下庭梧盡 달빛 비치는 뜰에는 오동잎 지고
霜中野菊黃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네.
樓高天一尺 누각은 높고 높아 하늘은 나직한데
人醉酒千觴 오가는 술잔은 취해도 끝이 없네. @ 觴 : 잔 상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은 거문고 가락에 싸늘하고
梅花入笛香 매화는 피리 곡조에 젖어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우리 두 사람 이별한 뒤에
情興碧波長 사무치는 정 강물처럼 오래도록 일어나리.
특히 마지막 구절은 장부의 애간장을 태우는 말이다.
소세양의 마음이 돌아섰다.
- 이 사람. 내가 자네한테 졌네.
이렇게 하여 소세양은 친구와의 내기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패배에는 여한이 없었다.
이후 소세양과 이별한 황진이는 소세양이 그리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相思相見只憑夢 생각하고 보고픈 마음 만날 길은 꿈길뿐
儂訪歡時歡訪儂 임을 찾아 반길 땐 임은 나를 찾아오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컨대 이로부터는 서로가 어긋나는 꿈길을
一時同作路中逢 같은 때 같이 떠나 길 가운데서 만났으면.
소세양이 돌아간 지 불과 2일만에 첫 인편이 왔다.
[ 명월아, 내 오던 날 ... 파주의 여관에 홀로 누웠으니라. 얼마나 그리웠는지,
네가 꺾어준 멧버들 가지를 머리맡에 놓고 황망하게도 두 뺨을 눈물로 적시고 말았다.
남곤의 시가 거짓이 아니더구나...
< 빈 뜰에 나뭇잎 구르는 소리 나니
간밤에는 신발 끄는 소리로 잘못 알고 마음 두근거렸네
여관 외로운 베개로 잠 못 이루었는데
쇠잔한 등불이 어둡다가 다시 밝아오네 >
이별이 길지만, 오래 살아서 몇 번이고 다시 보자꾸나... ]
진은 바로 그 인편으로 답신을 적어 보냈다.
[ 소슬한 달밤 무슨 생각하시온지요
뒤채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님이시여 제가 드린 말도 기억하시는지요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지요
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어도 모자란 듯
하루하루 이 몸을 그리워하시나요
바쁜 중에도 돌이켜 생각함이란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제게 향하신
정은 여전하신지요. ]
그리고 또 다른 답신
[ 동짓달 기나긴 밤을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밤이거든 구비구비 펴리라
청산은 내뜻이오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가실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 밤길 예놋다
내 언제 신의 없이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다
추풍에 잎 지는 소리야 낸들 어찌하리오 ]
바람꽃과 솔나리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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