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광주·하버드에서 숨쉰다, 우규승의 '소통 건축'

yellowday 2012. 2. 24. 17:45

입력 : 2012.02.24 03:01

[2008년 지은 하버드 기숙사, 美 '아름다운 건축물' 메달… 광주 아시아문화전당도 설계]
찰스江 가린다, 하버드 인근 주민기숙사 반대에 수개월 미팅갖고 7m 공간 틔워 줘
광주도 마찬가지… 항쟁의 성지, 전남도청 별관을 일부 보존해 공사
老건축가 작품엔 조화·개성이하나로 숨쉰다

건축가 우규승

2008년 '빛고을' 광주광역시에서 작은 혼란이 있었다. 구(舊) 전남도청 일대(연면적 17만8000㎡)에 거대하게 펼쳐질 예정이던 지하광장형 문화복합단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항쟁의 성지(聖地)인 전남도청 별관을 허물면서 만들 수는 없다"는 현지 시민사회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2년간 이어진 힘겨루기 끝에 '별관 일부 보존, 일부 철거'란 타협점을 찾으며 공사는 재개됐다.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문화창조원·아시아예술극장·어린이문화원 등 총 5개 동(棟)으로 구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논쟁적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재미(在美) 건축가 우규승(71)씨다. 서울대 건축학과, 미국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를 마친 뒤 1988년 서울 올림픽선수촌 단지(현재의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와 1992년 김환기 미술관, 1997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실, 2007년 캔자스 너먼 미술관 등을 설계한 유명 원로 건축가다. 2008년 모교인 미국 하버드대 기숙사도 설계했다. 이 건물은 미국 건축가들이 '보스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뽑아 주는 '할레스톤 파커 메달(Harleston Parker Medal)' 수상작으로 선정돼 다음 달 시상식이 열린다.

우규승씨의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프로젝트의 조감도. 앞쪽 가운데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는 광주 민주항쟁의‘성지’구 전남도청 본관이고 오른쪽은 일부만 보존될 도청 별관.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화제작을 만들어온 우씨를 22일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광주 공사 현장 점검을 위해 고국을 찾은 길이었다. "워낙 큰 프로젝트이고 많은 사람이 관련된 일이기에 여러 의견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는 "건축이란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의 소통, 그런 모든 것들의 복합체"라는 자신의 건축관을 담백하게 말했다.

'조화'와 '소통'을 우선하는 그의 지론처럼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 민주항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가장 낮은 자세에서 기억하자는 의도에서 설계됐다"고 했다. "민주화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건물을 모두 지하로 끌어내렸습니다. 대지를 파고 지하에서부터 10층짜리 건물을 쌓아올리는 개념이죠." 지하광장의 특성상 자칫 실내가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에 천장에 천창(天窓)을 달아 지상의 빛을 끌어들여 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 건물에 '빛의 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국 보스턴 시의 젖줄 찰스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미국 하버드대 기숙사의 전경. 설계자 우규승씨는 오른쪽에 보이는 켄틸레버(지지대 없이 뻗어나온 구조물)를 통해 주민들이 찰스강을 볼 수 있는 ‘창(窓)’을 만들고, 대학 건물에는‘관문’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Kyu Sung Woo Architects 제공

보스턴의 명물이 된 미국 하버드대 기숙사를 설계할 때도 난관이 있었다. "대학 초입에 위치한 만큼 기숙사를 넘어서 대학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게 해달라"는 하버드대의 주문에 따라 설계안은 붉은 벽돌로, 하버드대의 전통과 미래적인 친환경적 이미지를 동시에 구축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젖줄 찰스강을 가린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우씨는 6개월간 수십 차례 주민대표들과 대학관계자들 간 미팅을 가졌고, 절묘한 타협안을 설계에 반영했다.

하버드대 기숙사 측면 사진. 중간에 튀어나온 유리방은 대학원생들의 스터디룸이다. 학생들이 찰스강을 볼 수 있도록 많은 창을 냈고, 벽에는 하버드대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는 붉은 벽돌을 썼다. /Kyu Sung Woo Architects 제공

"주민의 시야는 터주되, 대학에는 개성 어린 건물을 선사하기로 한 거죠. 높이 20여m 6층 기숙사 건물 가운데 대학 입구를 바라보는 발코니는 아예 높이 7m 정도를 빈 공간으로 터버렸습니다. 주민들은 이 트인 공간을 통해 찰스강을 볼 수 있게 됐죠." 이 개성적인 현관은 기숙사에 하버드대의 '관문' 같은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우씨는 현재 카이스트 IT 융복합센터, 미 다트머스대 헬스케어 융합센터, 아프리카 가나의 총 2500실 대형호텔, 터키 이스탄불 주거 단지 설계 등 여전히 열정적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여기저기 내 브랜드를 던지고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건물이면서 그 장소에 맞는 건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老) 건축가는 "내게 남은 숙제는 건강관리뿐"이라며 그윽하게 웃었다.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