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44] 안중식의 백악춘효도

yellowday 2012. 1. 13. 20:30

입력 : 2012.01.11 22:12

작년 연말, 문화재청은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사진)'를 채용신의 '운낭자상',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원본 필름 등과 함께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문화재는 100년 전 유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제는 근대미술품도 국가문화재로 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백악춘효도'는 심전이 1915년에 백악산(북악산)의 새벽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 위로는 백악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로는 새벽안개가 걷혀가는 경복궁의 근정전·경회루·광화문, 그리고 해태상이 보인다. 텅 빈 육조거리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돈다. 제목이 백악산일 뿐 주제는 경복궁이다.

안중식의 '백악춘효도'는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있다. 여름과 가을에 그렸으면서도 굳이 '봄날의 새벽'을 그린 것은 경복궁, 즉 잃어버린 조국에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징성 때문에 이 그림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것이다.

심전은 소림 조석진과 함께 조선왕조의 마지막 화원이었다. 그는 오원 장승업에게서 배운 바대로 신선도, 노안도, 관념적인 청록산수를 그리는 전통화원이었으나 근대를 이끌어갈 제자를 열성으로 길러내었다. 1911년 그는 소림과 함께 '서화미술회 강습소'를 열어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심향 박승무, 이당 김은호 등 후진을 양성했다. 청전·심산·심향 등의 심(心)자는 모두 심전의 호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1918년에 심전은 최초의 근대적 미술가 단체인 '서화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민족서화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심전의 뒤를 이어받은 소림도 그 이듬해 5월에 연이어 타계하면서 서화협회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 '백악춘효도'에는 우리 근대미술계의 그런 아픔의 세월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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