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알렉산더 대왕은 대를 이은 ‘술고래’

yellowday 2021. 5. 16. 11:31

[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1.05.15 03:00 | 수정 2021.05.15 03:00

 

사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어식으로는 알렉산더인 그 남자. 마케도니아 소국의 왕자였다 그리스 언저리를 넘어 인도까지 엄청난 땅을 통일해버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는 대단한 술고래였기 때문이다. 지지난 주에 쓰고 싶었는데(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마케도니아 이야기를 조금 하다 말았다. 알렉산드로스가 통일한 땅덩이만큼이나 워낙 광활한 이야기라 그렇다.

탄생부터 기가 막히다. 흥청망청한 술자리에서 태어났다. 그런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건 아니고 정황상 그렇다. 아버지 필리포스는 전쟁 중이 아니라면 늘 금술잔에 술을 먹었고, 어머니도 술잔치를 벌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당연히 술기운과 함께 잉태되었을 뿐만 아니라 술기운과 함께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들이 늘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말이다. 핏줄이란 무서운 것.

'폭음의 나라' 마케도니아에서 자란 알렉산더 대왕은 평생 술을 즐겨 마셨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또 환경이란 무서운 것. 지난번에 썼듯이 마케도니아는 일명 ‘바르바로이’의 나라. 고상한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이 야만족이라고 불린 것은 단지 술에 물을 타먹지 않아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스인들은 와인과 물을 1:3의 비율로 섞어 마셨지만 마케도니아에서는 그냥 원액대로 마셨다.) 가슴에 불이 있었고, 터프했다. 폭음과 방종과 무절제, 그게 그 나라의 분위기였던 듯하다.

당시의 와인을 지금의 와인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돌멩이와 흙과 가지가 와인에 섞여 있었다고 하는데,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입에 흙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어떻게 될까? 또 그런 핏줄이라면 어떻게 될까? 더군다나 알렉산드로스라면? 어린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큰 불만은 아버지인 필리포스가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기는 거였다. 마케도니아 왕국이 커지고, 아버지는 대왕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치는 일이 말이다. 그건, 본인이 자라서 차지해야 할 위업인데 자꾸 아버지가 자신의 공을 가로채는 느낌을 받았던 알렉산드로스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투정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 하시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담? 아버지 너무 하시네.” 물론 이건 내 말투로 바꾼 건데, 이렇게 플루타르코스가 적은 걸 보고 꽤나 웃었다. 아버지가 너무 많은 부와 명성과 제국을 차지하는 게 인생 최대의 불만인 아이라니.

 

“그러니 아버지에게 질 수 없다, 절대로.” 나는 이게 어린 알렉산드로스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뭘 잘 하는가 하면 전쟁, 그리고 폭음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얼마나 전쟁터에서 종횡무진했는지는 다들 아실 테니 됐고, 술도 꽤나 마셨다. 보나마나 뻔하다. 마케도니아에서 술이란 전사다움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많이 마실수록 용맹하다고, 피가 끓는 용사다움을 지녔다고 인정받았을 그 나라에서 술을 들이붓지 않는 게 가능한가?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이라면 마셔야 한다. 무조건이다. ‘네(술)가 죽나 내가 죽나’ 하는 한판 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라고 묻고 싶겠지만 이건 현대인의 관점이고 고대인들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바르바로이로 불렸던 마케도니아인들이라면. 더욱이 술고래로 이름난 필리포스의 아들로, 그게 무엇이든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던 알렉산드로스라면, 마실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나의 추측이다.

 

그의 살갗에서는 더없이 기분 좋은 냄새가 났고, 온몸과 입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와 입고 있던 옷에 밸 정도였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 ‘향기 나는 살갗을 가진 체질’이 술을 좋아하는 것과 연관된다고 주장하는 거다. 논거들은 이렇다. 첫째, 몸에서 향기가 나는 것은 체액이 불같이 뜨거운 체온과 섞이기 때문. 둘째, 향기란 습기가 가열될 때 생기는 것. 그래서 건조하고 더운 지역에서 양질의 향료가 생산됨. 셋째, 알렉산드로스의 체열이 높아서 몸에서 향기가 나고, 술을 좋아함. 이런 전개인데… 몸에서 향기가 나는 건 그렇다 치고 ‘몸이 뜨거우므로 술과 찰떡궁합이다’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열을 식히려고 맥주를 마시기도 하지만 열을 식히려고 와인을 마시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또, 동토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그러니까 몸에 열을 내기 위해) 보드카를 들이붓는 러시아 사람들은 그럼?

 

어쨌거나 살갗에서 향기가 나는 덕분에 알렉산드로스는 술을 많이도 마셨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서 마시고, 나이 들어서는 익숙해서 마시고, 더 나이 들어서는 삶이 고돼서 마셨을 것이다.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 말을 달리고, 사자와 싸우고, 사자보다 더한 인간들과 싸운다. 세상에 이런 하드워커가 또 없다. 그리고 늘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는 전장을 달리다 돌아오는 것이다. 계속 왕국은 넓어지고, 그럴수록 그가 관리해야 할 사람과 권력과 이해관계가 늘어났을 테니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그래서 그는 퍼부었다. 나는 얼마 전에 낸 책에서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너무 많이 느끼는 여자”라고 썼는데, 알렉산드로스는 “너무 많이 마시는 남자”인 것이다.

 

‘그렇게 많이 마시는데 술맛을 알까?’라고 생각했었다. 술값 걱정하지 않고 계속 마실 수 있고, 술은 마셔도 마셔도 줄지가 않는데 술맛을 알까라고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술맛에 정통했을 거라고. 스트레스만큼이나 술맛을 가파르게 향상시키는 것도 없다는 걸 아니까 말이다. 그리고 적정량의 신체 활동도 술을 꽤나 맛있게 하는데, 그는 제국을 경영한데다 천리마인 부케팔로스를 타고 일생을 달리다 죽은 사람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는 너무 많이 마시는 남자였던 것만은 아니다. 너무 많이 달리는 남자인 동시에 너무 많이 마시는 남자인 동시에 너무 많이 느끼는 남자였다, 그는.

나는 목숨을 걸 일도 없고, 칼을 차고 적진을 뛰어다니며 베어지거나 베거나 할 일도 없고, 가진 게 딱히 없으니 크나큰 배신도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돌멩이가 섞인 와인을 먹지 않아도 된다. 다행인가? 정말 다행인 걸까? 또 병을 얻어 죽었다는 말만큼이나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는 말이 전해지는 그와 달리 오래오래 마실 것이다. 술을 마시며 떠오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 하나 불러내며 말이다.  조닷